[2023.6.11, 오후]
내 평생 이런 날씨는 처음이다.
점심 때까지만 해도 파랗던 하늘인데, 그래서 점심 식사 후
태리를 보기 위해 유경재에 들렀다가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오이 등을 지줏대에 더 단단히 묶는 작업까지 해 놓고[작업 끝자락에 갑자기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함]
차를 타고 막 떠나려던 찰나 폭우가 쏟아진다.
그래서 차 안에서 잠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본다.
비가 그치기는 커녕 잠시 후 무섭게 돌풍이 불어 마치 차가 날려갈 듯 하다.
뿐만 아니라 뭔가 차 앞 유리를 때리며 튀어오르는 하얀 돌맹이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차 전체를 구멍이라도 낼 듯 때리며 떨어지는 하얀 우박들.
그리고 바람은 더욱 거세게 몰아치고 우박과 함께 양동이로 쏟아붓듯한 폭우.
순간 겁이 났다.
유경재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 아닌가.
나는 차에 갇힌 채 차와 함께 날아가는 게 아닌가.
지금쯤 태리 집은 어디로 날아가고 만 게 아닌가.
그러면 태리는?
차안에 갇혀있다시피한 그 10여 분, 순간 아메리카의 토네이도를 연상했었다.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그렇게 10여 분을 떨었는데,(당시에는 한 시간도 더 되는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음)
이윽고 조금씩 강도가 약해지며 그와 함께 안도하면서 차 밖으로 나와본다.
마당에 쌓인 우박.
화단의 나무들이 앙상하다.
쌓인 우박.
이렇게 많이 내린 우박은 내평생 처음 본다.
탁구공만한 것도 많다.
수돗간의 처참한 광경.
뒤꼍.
산에서 황톳물이 쏟아져내린다.
텃밭 옆 아름드리 잣나무가 뿌리째 뽑혀 도로를 가로막고 있다.
처참한 모습의 유경재.
차가운 우박이 덮은 대지가 다시 데워지니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이제 막 따기 시작하던 오이도 처참하게 꺾이었다.
곁순치기까지 잘 해서 수확을 기대하게 하던 호박들은 온데간데 없다 ㅠ
수확을 앞둔 매실도 흔적없이 사라지고.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고추도 처참하기는 마찬가지.
우박과 돌풍, 폭우의 삼위일체 폭탄을 맞은 유경재 텃밭.
생존한 게 1도 없다.
올해 농사는 정녕 끝이란 말인가.
태리도 얼마나 놀랐을까.
집이 날려갈 것 같으니까 아예 집 밖에 나와 벌벌 떨고 있다가 이제야 거동하는 태리.
신기하다.
어설프기 그지없게 엮어놓은 태리집이 그대로다.
거목조차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돌풍의 위력.
돌풍이 지나자 차가 다니기 시작한다.
저 육중한 차가 흔들릴 정도였으니.
창고앞에 쌓여있는 우박.
단 몇 10분만에 이렇게 될 줄을 누가 알았으리오.
방울토마토의 수난.
아니 지붕도 뚫어졌나.
거실 천정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파란 낙엽으로 덮힌 길과 도로.
쌓인 우박의 두께가 한 자도 넘어 보인다.
정말 처참한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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