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 이어 패현 둘러보기는 계속된다.
한성경구 외곽순환로를 호수를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앞에 무슨 귀신인가 싶은 긴머리 소복의 여인이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 저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치파오 대신 고대한족의 복식인 중국전통한복인 모양이구나.
그렇잖아도 내가 있는 학교 내에서도 평소에도 가끔씩 저런 옷을 입은 학생들이 보이던데...
호수와 버드나무.
시운이 넘친다.
패궁.
정문 반대편으로 들어가면 만나게 되는 궁전.
한나라 깃발.
약간은 실망스러움을 안고 한성경구를 빠져나와 길을 건너가니 바로 한고조 원조 사당이 나온다.
이름하여 한고조원묘.
입장료가 10원인데 내가 굳이 가서 치성을 드릴 것도 아니고 해서 대문에서 사진만 담아본다.
낙패전. 건물 안에는 한 고조 유방의 상이 자리하고 있다.
한고조 원조 사당을 거쳐 오른쪽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유방이 영포의 반란을 진압하고 고향에 돌아와 잔치할 때 지었다는 <대풍가>를 기념하는 누대가 있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거의 인접해 있다. 아마 그 사이에 한나라 거리인 "한가"(漢街)가 있는 듯.
즉 한가 좌우로 한고조원묘와 가풍대가 있다.
대풍가 노래만큼 웅장하게 지어놓은 가풍대 모습.
그런데 출입문이 어디지?
오른쪽으로 돌아가 본다.
문이란 문은 모두 닫혀 있다.
하필 가던 날이 장날이다. 수리 중이라고 한다.
그래서 한나라 거리나 구경하기로 한다.
한국식 치킨집도 있다.
서주에는 한국인이 거의 없는데, 게다가 패현이라면 더욱 없을텐데 한국인보다는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중국인을 겨냥한 듯 보인다.
떡볶기에 신라면, 그리고 한국소주까지.
2013년-2014년 상해에 살 때만 해도 중국 티비를 틀면 어느 채널이든 꼭 한국 드라마를 보여주곤 했었는데, 이번에 중국 오니 아예 딱 끊어버렸다. 게다가 당시 길거리에는 가수이자 탤런트 비나 구준표로 더 유명한 이인호, 별그대의 스타 김수현과 전지현 등이 광고모델로 심심찮게 보였었는데 지금은 아예 없다. 심지어 2014년 1월 춘절 만회라는 티비프로그램에 이인호가 등장하여 중국 스타와 함께 노래를 부를 정도였었는데, 사드 이후로 중국정부는 철저히 한국과의 단절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경제적으로 당시에는 삼성 핸드폰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또 대부분 실제로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은 아예 삼성핸드폰 구경조차 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디 핸드폰 뿐인가? 자동차 역시도 한국차는 택시 정도일 뿐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어 있다. 대신 드라마상에서 부자의 상징으로 등장하는 핸드폰은 꼭 사과 마크의 아이폰이고, 차는 아우디라는 게 당의 정책인 듯 생각될 정도로 일률적이라서 놀랍다.
그런데 중국인들 속으로 들어가보면 그때만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한류를 좋아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평일 낮이라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 중 한 가게.
패현여행기념품을 취급하는 가게라고 해서 들어가 본다.
괜찮은 게 있으면 하나 살 겸 해서.
그런데 거의 이런 전통옷뿐이다.
여사장에게 사진 찍어도 되느냐고 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직접 찍기 좋게 잡아준다.
자기도 한국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인상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게 중국의 전통 한복이냐고 하니 맞다고 한다.
이건 언제 입느냐고 하니 평소에도 입고, 특히 명절이나 기념일 때 많이 입는다고 한다.
혹시 이러한 유행이 중국인들이 우리나라 서울에 와서 고궁에서 한복 입는 것 보고서 배운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요즘은 치파오 대신 한족전통복장을 찾는 게 그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미묘한 변화가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즉 만주족을 아예 역사 속에서 지워버리고자 하는 건 아닐까.
실제로 현제 소수민족으로서의 만주족 인구는 거의 얼마 되지 않으며, 만주족 본래 있던 글자는 지금 만주족조차도 모를 정도로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만주족 하면 동북 지역의 대표적 소수민족이고, 이를 계속 놔두면 혹시 모를 동북지역의 특별성이 부각될 수도 있으니...
내가 너무 비약해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ㅎㅎ
기념품 가게? 한복집 사장의 말에 따르면 이 거리는 저녁 5시 이후부터 야시장이 열려서 그때부터는 붐빈다고 한다.
다음에 올 때는 한번 구경하리라.
미리 검색해서 가보기로 한 곳 중에 하나인 사수정공원.
즉, 유방이 기의하기 전에는 패현의 사수정이란 곳의 일개 정장일 뿐이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공원이라고 한다.
무료 개방 공원.
내부로 들어가 본다.
면적이 작다.
1984년 문화대혁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중국 초기에 조성된 공원이다.
전형적인 갈지자형 회랑.
낙패당.
무슨 의미일까? 패현을 즐겁게 한다는 뜻?
가을 더위를 피해 휴식하는 시민.
사수정 공원이라면 당연히 유방의 초상이 있어야 되는데 글자를 보니 <노자> 속의 글이다.
응춘정.
유리정.
전쟁을 치루고 유방이 부하들을 데리고 이 우물에 와서 물을 마셨는데 두레박 줄이 워낙 많이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난간에 두레박 줄 흔적이 패였다고 한다.
설마 저 정도였으랴.
우물 난간이 흙으로 되어 있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두레박으로 물을 긷다 보면 자국이 날 수는 있었겠지.
사수정에서 패공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도로를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본 사수정공원 모습.
버스를 타고 패공원(아마도 서문)에 도착.
패공이 유방을 일컫는 말이니 유방과 관련된 대표적 공원이겠지.
뭐 별다른 구조물은 없고 호수 하나와 숲과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그렇게 무덥고 길던 여름도 이제는 끝인 모양이다.
하늘은 점점 더 높아지고 나뭇잎은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도법자연"인 모양이다.
패공원이라면 유방과 관련된 무엇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그래서 표지판을 보니 직진하면 패공정이란 정자가 있다고 한다.
그래, 가 보자~
원두막 같은 게 하나 나오는데 중년의 부부가 음식을 먹다가 막 보따리를 싼다.
혹시 패공정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바로 여깁니다.
네? 아~ 표지를 보니 그렇군요.
처음 한성경구에 실망, 두번째 문닫은 가풍대에 실망, 사수정공원의 규모에 실망에 다시금 패공정에 대한 실망까지 겹쳐 패현여행 전체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시간도 제법 된 만큼 어서 서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연못은 그래도 볼 만 하다.
연이 가득하여 연못이다.
연잎 사이로 연밥을 따는 배가 다닌 흔적이 보인다.
중국 제일의 자연시인이자 당나라 대표적 시인 왕유(王維)의 <산거추명>(山居秋冥. 산속의 가을저녁)이란 오언율시 중 경련의 유명한 대구 "대숲 시끄러운 걸 보니 빨래하던 아낙들 돌아가는 모양이고, 연잎 흔들리는 걸 보니 고기잡이배 내려가는 모양이다."(竹喧歸浣女, 蓮動下漁舟)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다. 연의 키가 조금 더 크다면 멀리서 보면 나즈막한 배 지나가는 건 보이지 않겠지만 연잎은 흔들리겠지...
공원을 빠져나오려는데 동문 안쪽에 여러 명의 조각상이 하나 크게 자리잡고 있다.
바로 대풍가를 짓던 당시 잔치자리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아래쪽에 대풍가가 잘 보이지도 않게 새겨져 있다.
아마 황제를 나타내려고 황금색으로 했겠지만, 그럴려면 바탕색을 진한 다른 색으로 했어야 글자들이 확실히 드러날 수 있을 텐데, 이마저도 급조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공원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부근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패현터미널행 시내버스를 탄다.
서주로 돌아가는 버스.
돌아올 때는 1시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터미널을 빠져나와 도로를 건너 36번 버스를 타려는데 부근에 지하철 표지판이 첨으로 눈에 들어온다.
아~맞다. 9월 28일 서주에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다고 했었지.
그렇게 한 고조 유방을 찾아 패현으로 떠났던 당일 여행은 끝이 났다.
예산을 충분히 들여 미래를 내다보고 문화재를 조성했더라면 이라는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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