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그 무덥던 8월에 다녀왔던 산시성 여행을 이제서야 정리한다.
그만큼 시간은 정신없이 나를 바쁘게 내몰았던 것이리라.
우선은 산시성에 대해 좀 알아보기로 한다.
이하 내용은 중국사이트에서 찾은 내용을 번역 정리한 것이다.
山西는 太行山의 서쪽이란 의미, “晋”이라 약칭하며,“三晋”이라고도 함. 省会는 太原市이다. 산서는 동쪽으로 太行山,서쪽과 남쪽으로는 吕梁山、黄河, 북쪽으로는 古长城에 접해 있다. 그리고 河北、河南、陕西、内蒙古 등의 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당나라 柳宗元은 산서성을 “表里山河”(안으로는 큰 강인 황하가 흐르고, 바깥으로는 태항산 등 높은 산맥이 감싸고 있음)라고 했다.
산서성은 중국민족의 발상지 중의 하나이며, 역사가 3천 년에 이르러, “华夏文明의 摇篮”이라고 일컬어지며, 본래 “中国古代文化博物馆”이란 이름도 있다. 동쪽의 太行山,서쪽의 吕梁山 등 산지 면적이 전체 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서성의 행정구역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평형사변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11개 시와 119개 현이 있으며, 총 인구는 3천6백만 정도(2012年)。
尧、舜、禹 등은 모두 산서성 경내에 도업을 세웠으며, 중국 최초의 노예제 국가인 夏나라가 晋南에 건국되었다.
商나라 때 역시 산서는 주요 통치 지역이었으며, 周나라 때 봉건제후국 晋나라가 山西 경내에서 건국되었으며, 晋文公이 春秋五霸 중의 한 사람이었다.
南北朝时期에 산서성은 북조 통치의 중심지역으로, 北魏는 平城(지금의 大同)을 도읍으로 삼았고, 东魏、北齐는 晋阳(지금의 太原)을 “别都”、“陪都”로 삼았다.
唐太宗 李世民은 太原에서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세웠는데, 이 때문에 산서성은 당 태종에게는 “龙兴”의 땅으로 인식되어, 太原을 唐나라의 “北都”、“北京”에 봉했다.
元나라 때는 大同、平阳(今临汾)、太原 등 세 개 성이 황하유역의 저명한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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