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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본능

[중국여행] 山西面游(산서성 면요리 여행): 산서성 개요

by 유경재 2016. 12. 20.

지난 여름, 그 무덥던 8월에 다녀왔던 산시성 여행을 이제서야 정리한다.

그만큼 시간은 정신없이 나를 바쁘게 내몰았던 것이리라.

우선은 산성에 대해 좀 알아보기로 한다.




이하 내용은 중국사이트에서 찾은 내용을 번역 정리한 것이다.


山西太行山의 서쪽이란 의미, “이라 약칭하며三晋이라고도 함. 省会太原市이다. 산서는 동쪽으로 太行山서쪽과 남쪽으로는 吕梁山黄河북쪽으로는 古长城에 접해 있다. 그리고 河北河南陕西内蒙古 등의 성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당나라 柳宗元은 산서성을 表里山河”(안으로는 큰 강인 황하가 흐르고, 바깥으로는 태항산 등 높은 산맥이 감싸고 있음)라고 했다.

 

산서성은 중국민족의 발상지 중의 하나이며, 역사가 3천 년에 이르러, “华夏文明摇篮이라고 일컬어지며, 본래 中国古代文化博物馆이란 이름도 있다. 동쪽의 太行山서쪽의 吕梁山 등 산지 면적이 전체 서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산서성의 행정구역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평형사변형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11개 시와 119개 현이 있으며, 총 인구는 36백만 정도(2012)。

 

등은 모두 산서성 경내에 도업을 세웠으며, 중국 최초의 노예제 국가인 나라가 晋南에 건국되었다.

나라 때 역시 산서는 주요 통치 지역이었으며, 나라 때 봉건제후국 나라가 山西 경내에서 건국되었으며, 晋文公春秋五霸 중의 한 사람이었다.

 

南北朝时期에 산서성은 북조 통치의 중심지역으로, 北魏平城지금의 大同을 도읍으로 삼았고, 东魏北齐晋阳지금의 太原别都陪都로 삼았다.

 

唐太宗 李世民太原에서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를 세웠는데, 이 때문에 산서성은 당 태종에게는 龙兴의 땅으로 인식되어, 太原나라의 北都北京에 봉했다.

 

나라 때는 大同平阳今临汾)、太原 등 세 개 성이 황하유역의 저명한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