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신의 옛집에서 나와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면 노신의 단편소설인 <공을기>(孔乙己)의 주인공 공을기가 자주 드나들던 술집인 함형주점이 나온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청말의 몰락한 선비를 전형화시킨 공을기는 이 주점에 언제나 혼자 와서 소흥주 한 사발을 회향두를 안주삼아 먹으면서, 입으로는 장황하게 떠들지만 막상 최후에는 외상값마저 갚지 못한 채 주점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내용. 짧으니까 인터넷을 통해 읽어봐도 좋겠다.
함형주점 앞에는 이렇게 삼륜자전거가 대기하고 있다.
노신고리의 끝나는 지점이기 때문에 함형주점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기 위함이다.
함형주점 정면.
앞에 있는 동상이 바로 공을기.
코믹한 얼굴이다.
최후로 외상값 19전을 갚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 걸로 소설이 끝났기 때문에
아직도 19전의 외상값이 있다고 적어놓았다.
여기에서 황주(소흥주)를 사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 마치 고속도로휴게소 자율식당 반찬처럼 가격과 기호 등을 고려해서 골라서 담으면 된다.
그런데 현금은 안되고, 술 파는 곳과 식당 안 사이에 이렇게 식당카드를 파는 곳이 있는데, 여기에서 적당한 액수의 카드를 사서 술이나 음식 등을 카드로 계산하고, 마지막에 나올 때 남은 돈은 카드 반납하면서 받으면 된다. 일정액의 야진(보증금)도 있다.
공을기가 즐겨먹었던 회향두가 한 접시에 9원.
왼쪽은 땅콩, 오른쪽이 회향두.
혼자서 무더운 여름날 한 병을 먹기엔 좀 그렇고,
예까지 와서 맛을 보지 않기도 그렇고 해서 한 사발만 맛보기로 한다.
안주까지, 한 상 그득하다.
어이! 아가씨! 이것 좀 같이 드시려우?
식당 내부.
공간이 꽤 넓다.
필경은 취해서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함형주점 한창 잘 나갈 때.
소흥주의 맛에 기분에 약간 취해서 함형주점을 나오니, 한 인력거꾼이 다가와 책을 펼치면서 이러이러한 데를 가보지 않겠는가, 최대한 싸게 해주겠다고 해서, 대신에 하지장사당과 주은래고거를 함께 가자고 합의, 드디어 삼륜자전거를 타고 소흥 옛거리를 누빈다.
식당 앞, 식당 종업원 교육 중인 것도 구경하고.
주은래 조상이 살던 집.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먹여살린다는 뜻의 석양당.
중국혁명의 무서운 아버지 역할을 모택동이 맡았다면 주은래는 항상 온화하게 국민들을 보듬어주는 어머니 역할을 했었다. 모택동도 소흥에 와서 시를 남겼다.
소흥이 나은 역대 명인들.
하나라의 시조 우왕에서부터, 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 그의 재상이었던 범려와 문종, 미인계에 동원되었던 서시, 청말민국초의 추근, 채원배, 노신 등 참으로 많기도 하다.
주은래의 생애에 대한 기록 전시.
나는 소흥인이라고 늘 말했었다는 주은래.
주은래의 친필.
하나라 우왕의 무덤 앞에서 웅지를 키웠던 주은래.
주은래의 휘호. 글씨가 상당히 개성적이다.
부드러운 듯 강인한 느낌을 준다.
주은래 가계.
주은래 신분증.
주은래 조상집을 나와 이번에는 당나라 때 유명한 시인이었던 하지장의 사당을 찾았다.
그 역시 고향이 이곳 소흥이며, 오랫동안 벼슬하다 80이 되어 은퇴하여 고향에 돌아와 지은 시 <회향우서> 두 수가 특히 유명하다.
어진 이(하지장)를 숭모하는 사당.
하지장 동상.
하지장에 대한 소개.
자가 계진이며 스스로 "사명광객"이라 했다. 비서외감을 역임했기 때문에 하비감이라고 한다.
하지장을 그리워하는 정자.
<회향우서>(고향에 돌아와 우연히 지은 시)
고향 떠난 세월이 오래도 되어,
지금은 그때 사람 대부분 죽고 없네.
오직 대문앞 거울같이 맑은 호수만이
봄바람에 옛 물결 변하지 않았네.
사실 이번 여행 목적 중에 하나가 이 시에 나오는 경호를 직접 보는 것이었는데,
소흥 사람 여러 사람에게 물어도 대답하는 사람마다 경호는 지금의 감호(鑑湖)를 말하며,
그곳을 가려면 시외로 한 시간 이상 가야한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경호와 감호가 따로 있다고도 했다.
결국엔 가보지 못하고, 마지막날 택시를 타고 소흥북역으로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위에
경호습지공원이라는 글자가 보였으며, 이어서 호수가 하나 보였는데, 어쩌면 그곳이 시 속의 경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습지 공원은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외곽지이니,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데,
도무지 하지장 작품 속의 경호를 제대로 알려 주는 소흥 사람이 없어 답답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또 하나의 작품. 앞 작품보다 더 인구에 회자되어온 작품.
어려서 고향을 떠나 늙어서 고향에 돌아오니,
고향사투리는 변함 없건만 귀밑머리는 다 빠졌네.
아이들이 나를 보고도 누군지 몰라서,
웃으면서 묻네. 손님은 어디서 오셨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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