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걸어서 예약한 호텔인 승리동로의 왕조대주점에 도착했다. 부근에서는 그래도 가장 높은 빌딩에 속하는 20여 층은 족히 넘어보였다.
프론트에서 장황하게 예약자임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미 내 예약 정보가 담긴 용지 하나가 출력되어 있었고, 그것을 보여주면서 맞느냐고 한다. 이어서 여권 제출 복사, 하루 250원에 이틀 500원, 야진 500원 도합 천 원을 내고 영수증과 방카드, 다음날 아침식권 등을 받아들고 16층으로 올라갔다.
방은 좀 좁았으나 바깥 경치, 시야 하나만큼은 더없이 좋았다. 아울러 객실의 여러 가지 설비들이 크게 나무랄 데 없이 무난해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부근에 바로 시 광장과 공원이 있고, 바로 뒤편으로는 소흥의 옛거리 중의 하나인 왕희지 고거와 채원배 고거, 문필탑 공원 등이 있어 위치적으로도 꽤 훌륭한 호텔이었다.
일단 방에 짐을 풀어 놓고, 호텔에서 주는 작은 지도책 하나와 작은 배낭, 카메라 등을 챙겨 우선 “노신고리”라는 곳으로 향했다. 대략 1.5km 되는 거리인데, 거리 구경도 할 겸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실재로 거리가 꽤 되었다. 노신고리에 도착하니 휴일이어서 그런지 관람객들이 무척 많았다. 아울러 도시 전역에 푸른 지붕의 삼륜차(자전거)가 넘쳐나고 있었다. 이 차를 타면 대략 100원 정도에 자기들 안내책자에 수록된 경치를 돌아다니며 다 보도록 해 준다고 한다. 보니 옛거리가 많았고, 또 무슨 드라마나 영화촬영지 등이 많아서 내가 보고자 하는 것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직접 찾아다니기로 했다.
일단 노신고리 앞의 관광안내센터에서 통표(소흥시 전역의 주요관광지 통합입장권)를 150원에 구입하였다. 이게 엄청 싸게 치는 것이니, 소흥여행하시는 분은 꼭 이렇게 하시도록.
내가 묵었던 호텔인 소흥왕조대주점.
특가방이라 크기는 크지 않다.
그런데 혼자 쓰기에는 적당한 편.
객실의 설비들은 일반 호텔들과 거의 비슷하다.
단, 전망 하나만큼은 더없이 좋다.
보이는 곳이 바로 왕희지가 살던 옛 동네이다.
골목들마다 분주한 주민들과 느긋한 관광객들이 함께 하고 있다.
드디어 도착한 노신고리.
노신이 살던 옛 마을이란 뜻이다.
노신(1881-1936), 현대 중국의 정치적 1인자를 모택동이라고 한다면 정신적 지도자는 단연 노신이 아닌가 싶다. 22세에 의학을 배우기 위해 얼마 전 쓰나미가 휩쓸었던 센다이의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우연한 기회에 중국인의 병은 육체적 병이 아니라 정신적 병이란 깨달음을 얻고, 바로 귀국하여 청말, 민국초 갈길을 못찾고 실의에 빠져있던 중국인의 정신을 깨우치기 위해 문학, 그 중에서도 소설이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최초로 고문이 아닌 백화문으로 중국인을 정신병자로 비유하고, 공맹의 예교를 사람을 잡아먹는 도구로 간주한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경천동지의 파장을 일으켰으며, 이후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강하며, 쉽게 포기하고, 판단력이 없는 무능한 당시 중국인의 자화상을 "아큐"라는 인물로 창조해낸 세계적 명작 <아큐정전>을 발표하여 명실공히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이자, 세계문학 속에 우뚝하게 선 사람이다.
이후 공산당 창당과 함께 문학혁명과 혁명문학에도 참여, 1930년 좌익작가연맹의 수장이 되어 중국문단을 이끌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1936년 중국의 건국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상해에서 죽을 때 상해시민들이 노신의 관위에 "민족혼"이란 글자를 덮어준 것은 그의 생애를 정확하게 일괄한 것이리라.
바로 그가 살던 옛 동네, 옛 집, 옛 서당을 방문하게 되니 적잖게 설레인다.
왼쪽으로 도로를 건너 조금 걸어가면 남송시기 대문호 육유의 애첩인 당완의 거처였던 심원을 볼 수 있는데, 이후에 들어가 보기로 하고, 오늘은 노신의 옛 거리를 마음껏 만유하고자 한다.
아직 이용해보지는 않았지만 돈을 넣으면 대여할 수 있는 자전거.
상해에도 보인다.
소흥에는 이와 같은 삼륜자전거가 거리에 넘쳐난다.
100원 정도 주면 1-2사람을 태워 시내 곳곳의 옛거리들을 구경시켜 준다.
노신거리의 상징인 벽화.
그 앞 광장 중간의 여행안내센터.
여기에서 표를 사면 된다.
노신과 담배가 무슨 큰 관계가 있나, 저렇게 상징벽화에까지...
이러한 길이 쭉 이어지고, 오른편으로 옛 집들이 있어 관람할 수 있다.
이하 대부분은 노신의 조상들이 거처하던 집 내부의 모습들이다.
노신 집안이 불교를 믿었나 보다.
집 규모가 엄청나다.
본래 부자였던 모양이다.
노신조거. 즉 노신의 조상들이 살던 곳.
민족의 척추. 민족의 동량.
노신은 본래 성이 주(周)씨이고, 이름이 수인(樹人)이다.
동생 주작(作)인도 형못잖게 현대문학에 공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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