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 보면 예전에 잘 알던 사람, 특히 친하게 지냈던 사람, 가령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창시절을 함께 한 친구들이나,
군대 3년 동안 애환을 함께 했던 전우들 등과 그때뿐 그 후로는 한번도 다시 만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허다하리라 싶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먼 거리를 무릅쓰고 억지로라도 동기회니, 동창회니, 향우회니, 전우회를 만들어 인연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고향에서 멀리 떠나 객지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 또한 작년부터 벼루어오던 일 중에 하나로,
중고등학교 때의 친구와의 만남이 있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 나이 때가 다 그렇듯 서로가 자녀 양육이다 돈벌이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삶의 챗바퀴를 벗어나기란 너나없이 용이하지가 않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어쩌다 서로 시간이 맞아
고향 부근에서 운동을 할 일이 생겨 쉬어야 할 주말에도 부지런히 먼 길을 달려갔다.
운동 전에 일단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난 식당.
고향에 사는 친구가 정한 곳으로, 영천은 물론이요, 경주, 포항, 심지어 대구에까지 꽤나 소문이 나 있는 맛집이라고 한다.
식당 이름은 편대장영화식당.
편대장이라고 하기에 나는 공군전투기 조종사 출신인 줄 알았었는데,
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사장님의 성이 편씨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그렇지 뭔가 사연이 있을 법 한데 오랫만의 친구와의 재회 때문에 맛집의 유래에 대해서 알아볼 여유가 없었다.
명함상으로만 보아도 50년 전통이라고 하니 대를 이은 맛집이거나 지금 사장님의 첫직업일 확률이 있겠다.
명함 뒷면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이 본점 외에도 대구, 포항은 물론이요, 경기도에까지 분점이 있다.
게다가 내가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문경에도 있다니
나중에 문경점에도 한 번 가봐야 되겠다.
위치는 영천버스터미널 바로 옆.
맛집은 맛집인 모양이다.
여러 기관에서 인정하는 패가 식당 입구에 붙어 있다.
카운터 바로 앞에서 두 사람이 고기손질에 바쁘다.
식당은 1층 중앙통로를 기준으로 좌우에 방이 세 개 정도 있고, 2층도 있다고 한다.
통로 오른쪽 방. 테이블 세 개.
메뉴판을 구경하자.
운동 전인데다 대낮부터 술을 먹을 수도 없으니,
식사 메뉴는 이름도 특이한 소찌개나 된장찌개가 좋을 듯 한데...
가격을 보아하니 된장찌개는 고기 먹은 사람들의 주식 정도로 보이니 뭘 먹을까.
소찌개가 좋겠다 싶어 3인분을 시켰다.
그런데 종업원이 계속해서 육회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육회 전문집에 와서 왜 육회를 먹지 않느냐는 투다.
고향이 가까와서 그런가.
소찌개는 옛날 고향집에서 먹던 맛과 매우 닮았다.
그래서 더 맛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육회 2인분을 시켰다.
세 사람의 점심식사로는 제법 비싸게 먹는 셈이다.
육회, 과연 명불허전이다.
보드랍고 입에 살살 녹는, 그리고 약간은 씹히는 맛이 다시 그만이다.
게다가 아무런 인공양념을 곁들이지 않았다고 하니 그 순수한 맛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문경점도 맛이 이와 같아야 할 텐데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오랫만에 만난 중고등학교 친구와의 떠들썩한 반가움 때문에 맛에 대한 정밀한 느낌은 말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틀 지난 지금 생각에도
그때 그 구수한 고향맛이 진하게 나던 소찌개와 보드랍고 향긋했던 신선한 육회의 맛이 아직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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