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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본능

[서울여행] 자랑스런 왕실문화 세계문화유산 종묘

by 유경재 2013. 2. 25.

근래 와서 서울나들이가 부쩍 잦아진다.

비록 다른 볼 일 때문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서울의 문화유적을 관람할 계획을 세웠다.

중국을 전공하는 입장이지만 북경의 고궁[자금성]은 몇 번인지 계산도 안 될 정도로 드나들면서 막상 우리의 문화유산인 서울의 고궁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 없다는 자괴감이 근래 와서 심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옛날도 한참 옛날에 경상도 시골의 한 중학교에서 수학여행 차 서울에 왔을 때 어디를 들렀는지도 모를 정도로 주마간산식으로 구경했던 서울의 궁성과 대문, 그리고 이후 덕수궁과 비원 정도를 구경한 기억만 아련히 가지고 있으니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전차로 가장 먼저 찾기로 한 곳은 종로3가역에서 가까운 종묘.

물러나는 겨울이 아쉬운 듯 아직은 바람이 많이 차다.

종묘 정문[외대문] 앞 종묘광장공원.  

 

안내판.

 

문화재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하고자 한다면 시간관람제를 이용하면 된다고 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왕실의 역대 제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토지신, 곡식신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설치했던 사직단과 함께 조선시대 주요한 제례장소였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조상신에게 제사지내던 종묘, 서쪽에는 토지곡식신에게 제사지내던 사직단을 배치한 것이다. 

 

신의 길이란 뜻의 신로 또는 신도.

신에게 양보하면 좋으련만 날씨가 풀리자 얼었던 땅과 눈이 녹아 땅이 질퍽한 까닭에 적잖은 사람들이 신롤를 통해 걷고 있다.

 

 

왼편의 연못.

아직은 겨울이다.

 

고려시대 왕이었던 공민왕의 신위를 모신 공민왕신당.

고려시대 왕의 사당이 어찌 조선시대 왕실의 제례장소인 종묘 안에 있는 것인지...

안내문을 읽어보니 역시 그 이유는 밝혀져 있지 않다.

 

어쩌면 고려시대 임금 중 개혁정치를 행했던 대표적인 왕을 상징적으로 모셔 둔 것은 아닐지.

그리하여 조선 역시 개혁적이고 민족자주적임을 우회적으로 표방한 것은 아닌지, 마음대로 추측해본다.

왼편의 기마 그림은 공민왕이 직접 그린 것이라고 한다.

 

공민왕 신당 부근에 있는 또하나의 연못.

 

공민왕신당에서 나와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오른편으로 종묘교육홍보관이란 이름의 건물이 나온다.

일단 들어가보자.

 

예전에는 제사에 쓰이는 향과 축문 등을 보관하고 준비하던 향대청이란 장소라고 한다.

닫힌 방문 안에 뭔가 자료가 있는 모양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제사 지낼 때 하늘에 있는 혼을 부르기 위해 피웠던 향로를 옮기던 길이란 뜻이리라.

 

교육관 건물의 한 켠.

 

향로 정면의 마루를 올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시대 제례문화에 대한 영상자료를 관람하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10여 분 동안 압축된 조선시대 왕실의 제례문화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철상하고 음복을 마친 후에 분축한다는 것.

그런데 우리 집안은 지금 종헌을 마친 이후 바로 철상하고, 그와 동시에 분축하고 있다.

음복도 제사의 한 과정이라고 보면 조상신이 음복의 모습까지 지켜보게 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보인다.

 

영상홍보관을 나와 바로 옆 건물로 옮겨가면 신위와 제수가 차려진 제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선시대 역사의 근원인 원시시대의 전통을 살려 생고기를 제수로 올렸다고 한다.

제일 오른쪽 끝에 세로로 나란히 놓인 것이 술잔이고, 반대편 끝은 밥그릇이다.

 

 

교육홍보관을 나와

조금 더 안쪽으로 가면 규모가 작은 건물이 나오는데, 이른바 재궁.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임금과 태자가 목욕재계하던 곳이라고 한다.

 

들어가 보자.

 

오른편에 위치한 세자가 재계하던 곳.

 

세자의 상.

 

재궁은 총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앙은 임금이 재계하던 곳이고.

왼편은 재계를 위해 목욕하던 곳.

 

제기 그림으로 이루어진 병풍.

특이하다.

 

부귀를 상징했던 모란꽃 그림의 병풍.

 

임금이 재계하던 정궁.

 

중앙 정궁 왼편에는 목욕하던 곳.

작은 가마가 전시되어 있다.

 

세자가 재계하던 곳.

 

 

재궁을 나오면 바로 정전을 만나게 된다.

정전 오른편의 담장.

 

역시 신로가 표시되어 있다.

 

불그스레한 색의 곡선이 아름다운 소나무.

 

 

정전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문.

 

오른쪽 계단 위의 건물이 바로 역대 제왕의 신위를 모신 곳.

지금은 모두 닫혀 있다.

 

 

 

 

 

 

 

 

놀랍게 큰 규모의 정전은 사실 구경할 거리는 별로 없다.

대신에 눈을 지그시 깜고 조선시대 이곳에 이루어지던 왕실의 성대한 제사 장면을 상상해본다.

귀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연주와 춤, 이른바 종묘제례악이 마당 가득 성대하게 울려퍼지는 장면이 잠시 떠오른다.

정전을 나와 조금 왼쪽 뒷편으로 가면 영녕전이란 제단을 만날 수 있다.

 

정전의 신위를 옮겨두던 곳으로,

모든 면에서 정전의 복사판이지만 규모면에서 조금 작다는 차이를 보인다. 

 

사진으로 봐서는 규모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상하다.

마당의 바닥 곳곳에 이러한 거대한 쇠고리가 박혀있다.

어떤 것은 땅에 박혀있고,

 

또 어떤 것은 바위에 박혀있기도 하다.

 

 

비록 햇살은 따뜻하지만 바람이 제법 세차서 관람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날씨뿐만 아니라 수목의 색조차 아직은 무채색이어서 감흥이 조금은 떨어지는 것 같다.

날씨가 좋은 봄이나 여름에 다시 찾아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