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림지 산책을 끝내니 아직 점심 때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천에 온 김에 말로만 듣던 탁사정으로 향했다.
의림지에서 충주, 원주 방향으로 돌아나오다가 봉양에서 탁사정, 베론성지 방향으로 오다가
베론성지와의 갈림길에서 100미터 정도 더 가면 다리가 나오는데,
그곳에서 옆으로 접어들면 탁사정 계곡 구역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 두고 옛날 다리 위에 서니 다리 아래로 시원한 계곡물이 흘러간다.
보이는 다리는 새로 놓인 다리다. 원주로 가는 국도이다.
벌써 물속에 뛰어든 사람도 보인다.
하긴 부산의 해수욕장들이 6월초에 이미 개장했다고 했으니, 벌써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실재 기온은 그리 높지 않건만 햇살이 따가와 여름 날씨 같은 오늘, 나 역시 형편만 되면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날씨다.
왼쪽 바위봉우리 위에 기와지붕 한 쪽이 살짝 보이는 게 바로 탁사정 정자이다.
이렇게 보니 모습이 완연히 드러난다.
어떻게 올라가나? 가만 보니 계곡 갈대밭 옆 쌓인 돌축대 밑으로 길이 있고,
사람들이 그곳을 통해 걸어나온다.
그렇다면 저쪽을 따라 가면 봉우리 뒷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겠구나.
내멋대로 판단하고 좁은 길을 따라가본다.
가다가 뒤를 보니 두 개의 다리 밑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차지하고 태양을 피하고 있다.
요리도 하고, 쉬기도 하면서...
길 끝에 거의 다 다다르니 수심이 제법 깊은 듯 하다.
낚시하는 사람, 물과 뭍을 들락거리며 장난치는 아이들...
어찌 진입로가 이렇게 좁고 험할까?
길은 끝나고 더 이상 이어지지 않으니, 저 위의 탁사정엔 어찌 오른단 말인지.
모르겠구나. 온 김에 쉬었다 가자.
축대를 보니 여기에도 건물을 지었던 흔적, 아니 지으려고 했던 흔적이 보인다.
주변에 쉬는 사람들이 보여서 길을 물으니 왔던 길로 돌아가 큰길(국도)가에서부터 진입하는 길이 있다고 한다.
다시 돌아가는 수밖에.
다시 옛 다리로 돌아와 국도를 찾아 조금 더 가니 반가운 표지판이 나왔다.
산쪽으로 80미터 더 가면 나온다는 말씀.
멀리서 봤을 때가 더 멋있어 보였다고나 할까. 가까이서 보니 너무 초라하다.
본래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름도 초나라 충신 굴원의 <어부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정작 <어부사>에는 "청사탁영, 탁사탁족"이란 말이 아니라, "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이라고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탁(濯)"자는 세탁하다, 씻다는 뜻이니 <어부사>에서 왔다고 억지로 우길 수 있지만 "사斯"자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이 글자는 이(것)이란 뜻을 가진 대명사인데, 정자의 이름을 문법대로 풀이하면 "이것을 씻는 정자" 정도의 의미가 될 것이다.
아니면 나 역시 억지춘향식으로 현학적으로 끼워맞춘다면 "사"자를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찾을 수 있겠다.
즉,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오는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선생님이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은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도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이렇게 봤을 때 "사"자는 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다면 정자의 이름은 물로 씻는 정자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믿거나 말거나...
어쩌면 "사"자란 대명사를 굳이 쓴 이유는 사람에 따라 대신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게 한 것은 아닌지...
각자 자기가 씻어버리고 싶은 것을 거기에 넣으면 되도록 하는...
욕심을 씻고 싶은 사람은 "사"자를 욕심의 대명사로 보면 될 것이요, 불행이나 재앙을 씻어버리고 싶은 사람 역시 그것을 대명사로 보면 될 것이니 얼마나 가변적이며 폭넓은 이름이 되겠는가.
정자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 풍경.
두 개의 다리, 그 아래로 쉬지않고 흘러가는 물.
바로 아래, 천애의 절벽 아래로 좀전에 길을 잘못 들어 만났던 용소가 초목의 색을 닮아 푸르다.
탁사정에서 온갖 세파로 얼룩진 마음을 초하의 바람으로 시원히 씻어낸 후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만난 야생화들. 엉겅퀴꽃?
야생화가 아니라 식당 주인이 조경을 위해 심은 꽃인데, 이름을 모르겠네. 생김새는 국화 같은데, 5월에 무슨 국화? 게다가 꽃잎 하나하나가 국화의 꽃잎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으니...무슨 꽃일까.
역시 이름을 모르겠다. 원추리 같은데 원추리는 노란꽃을 피우니 아닐 테고, 그렇다면 난초의 일종일까?
작고 귀여운 빨간색의 꽃들. 이름은 당연히 모르는 것.
탁사정을 빠져나와 베론성지로 갈 생각이었는데, 베론성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도로공사를 하는 지 트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바삐 오고가는 것을 보고 다음 기회로 미루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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