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저녁에 상해대 중문과 요용교수에게서 걸려온 전화, 중추절[중국어]은 명절인데 혼자 어떻게 지내냐, 괜찮다면 자기가족들과 나들이 같이 가자고 한다. 당연히 오케이.
그리고 추석날 아침이 밝았다. 지금쯤 가족친척들이 모여 차례준비를 하겠지. 그동안 수십 년을 거의 빠지지 않았었는데, 올해는 아내와 아이 둘이 내몫까지 충분히 해주리라. 그래서 크게 걱정은 되지 않는다. 아침을 대충 챙겨 먹고, 미러리스카메라를 챙겨 작은 배낭 하나 메고 약속장소인 상해대학 북문으로 나갔다.
중국의 공식적인 추석휴가는 오늘부터 3일, 그리고 일요일에는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학생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약속장소에 한참을 기다리니 검은색 포드 세단이 하나 다가와 반가운 요용 교수가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든다. 조수석이 비어 있어 조수석에 타니, 운전은 남편이 하고 자기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들과 함께 뒷자석에 타고 있었다.
이후 차는 복단대학에 고급진수생으로 와 있는 요용의 대학 후배 하나를 데리러 복단대학 쪽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려 운남이 고향이라고 하는 증 선생을 태우고 서남쪽 교외를 향해 외환로와 고속도로를 타고 다시 한참을 더 달렸다. 명절 연휴의 시작이라 교외로 나들이가는 차량이 많아서 곳곳에서 정체를 빚고 있었다.
끝까지 목적지를 묻지 않으려다 너무 오래 걸려 목적지가 어딘지 물어보니, 상해에는 산이 없는데, 유일하게 사산(佘山)이라고 하는 나지막한 산이 하나 있다고 하며 그곳으로 간다고 한다. 佘자는 한국인에게는 참으로 낯선 한자다. 중국으로는 서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에 이정표에 쓰인 글자를 봤을 때 余자가 오래 되어 중간에 마모된 것인가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그 일대가 얼마 전 칠보옛거리 갈 때 9호선을 타고 가다가 봤던 9호선의 종점인 松江 지역이었다. 그렇다면 지하철로도 올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얼마 가지 않으니 드디어 목적지. 사산은 산이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의 야트막한 산이 도로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우리는 먼저 서사산으로 올라가 정상 가까운 곳에 미리 준비해온 자리를 깔고 앉아 먹을 것을 꺼내놓고 먹으면서 쉬었다.
정상에는 천주교회가 자리잡고 있는데, 나는 요용교수의 남편인 장(蔣)교수...화동사범대학의 교육학 교수와 함께 천주교회를 둘러보았다. 상해에는 성당과 교회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되는데, 장교수에게 물어보니 많지는 않지만 신도가 있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성모마리아상이 있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광고책자가 비치되어 있으며, 차트를 통해 믿음과 과학이 다름을 설명하고 있었다. 자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보고 처음에는 저들이 모두 신도들인가 했는데, 다만 의자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배낭 가득 준비해온 음료수, 월병, 과자, 과일 등을 어느 정도 먹은 후 우리는 서사산의 다른 길을 통해 내려오면서 지진과학관을 관람한 후 이어서 동사산에 올라갔다. 서사산보다는 사람들이 조금 적은 것 같고, 높이도 조금 더 높은 것 같기도 했다. 둘 다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중문으로 올라가 북문으로 내려오는데, 산중턱에는 온통 수령이 제법 되는 키큰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동사산은 대나무숲으로 이루어진 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두 개의 산을 구경한 후, 주차장으로 가서 다시 차를 타고, 이번에는 부근의 호수를 찾아갔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호수의 매표소에서는 입장료가 무려 120원이었다. 그래서 극구 사양하며 다른 데로 가자고 하여 다시 빠져 나와 부근에 있다고 하는 진산식물원으로 향했다.
대략 5-6키로미터 달리니 마치 물고기 형상의 세 개의 유리 지붕 온실이 나타났다. 식물원의 입장료 역시 만만치 않게 60원이었다. 이마저도 사양하기가 어려웠으나, 내심 식물원에 뭐 크게 볼 게 있겠나 하며 그 중의 한 온실[진기한 식물관]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마자 온갖 신기한 꽃들과 나무들이 내 눈을 현란하게 유혹하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어 하나하나 찍어나가는데, 모든 것들이 처음 보는 기기묘묘한 화초와 나무들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폭포와 계곡들을 꾸며 놓아 관람객들의 시야를 지루하지 않게 해 주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었다.
두 번째 온실 역시 열대지방의 신기한 화초들이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나는 식물들에게 정신이 빠져 있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벌써 바깥에 나가 있었다. 나도 할 수 없이 대충 관람을 마무리하고 밖에 나오니 벤치에서 다시 먹을 것을 꺼내어 먹으면서 좀 쉬자고 한다. 조금 휴식한 후 응당 나머지 한 온실을 더 볼 줄 알았더니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하면서 조금 있으면 셔틀유람차가 운행을 마치니 마치기 전에 타자고 한다.
나는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무작정 따라갔더니 유람차 타는 표를 다시 사와 줄을 선다. 잠시 후 순서에 따라 10여 명이 타는 유람차에 타니 차는 넓은 공원을 한바퀴 돌기 시작한다. 중간중간에 정류장이 있어, 사람들이 내리고 타고 한다.
아하! 그렇구나. 식물원 중의 온실은 극히 일부분이고, 이 넓은 공원 전체가 식물원이니, 나머지 곳도 보려면 이러한 셔틀버스를 타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가다가 광산식물원 앞에서 내려 구경하였다. 광산은 예전의 채석장을 식물원으로 꾸민 듯 한데, 전체 길이가 약 400미터인데, 그 중에 평탄한 길은 없고, 가파른 계단, 좁은 다리, 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는 호수처럼 물이 채워져 있었고, 높은 곳에서 폭포수도 떨어지고 있어 제법 신경을 써 꾸민 듯 보였다. 그 끝자락에는 또 약용식물 전시장이 있었으며, 우리는 거기 잔디밭에서 조금 쉬다가 시간이 어느덧 6시가 되어 주차장으로 돌아와 시내로 향했다.
차안에서 두 부부는 꾸준히 저녁식사를 어디서 할 것인지를 의논하더니 결국에는 상해시내보다 송강 지역 어느 깨끗한 식당에서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비교적 고급스러워 보이는 촨차이 식당 한 곳으로 들어갔다.
마침 2층에 우리 일행에게 적당한 독립된 방도 있었고, 테이블엔 미리 몇 가지 보기 좋은 월병이 접시에 놓여 있었다. 추석이라서 공짜로 손님에게 주는 것이라고 한다. 족발, 훈둔, 생선찜 등에다 나를 위해 청도맥주와 고월룡산이라는 황주까지 시켜주었다.
식당에는 아예 출입구쪽 벽에 와이파이가 된다는 표시와 함께 비번까지 적어놓았다. 이 참에 가족생각이 나서 잠시 화상통화를 하기도 하였다.
즐거운 식사시간을 마치고, 다시 돌아나와 고속도로를 타고 이번에 갈 때의 역순으로 먼저 증 선생이 있는 복단대학 쪽에 갔다가, 내려주고 다시 우리 아파트 앞에 와서 나를 내려주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두 부부의 마음씀에 너무 감사했던 하루였다. 나중에 한국에서 이 은혜를 갚을 날이 반드시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이국, 상하이에서 추석의 밤을 보냈다.
동서산으로 들어가는 입구. 정문은 아니고 중문 정도.
입장료는 받지 않았다.
조금 올라가니 탑이 하나 나타났다.
수도자탑이라고 한다.
북송 때의 탑이라고 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지금도 건장하다.
한 수도자가 탑 축조할 때 참여한 후 탑이 완성되자 분신하였다고 해서 수도자탑이라고 한다는데...
조금 더 올라가면 제법 넓은 터가 나온다.
앞에 보이는 산이 동서산이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 있다.
서서산 아래는 별장지대, 우리식으로 말하면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공원에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이러한 텐트가 보인다.
중국도 점점 소득이 높아감에 따라 아웃도어 문화가 발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자리를 잡아놓고 윗쪽에 있는 성당으로 가본다.
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
아니다, 대부분이 더운 날씨라 쉬고 있는 중이다.
요용 교수의 남편이 무겁게 지고 온 배낭에서 나온 음식들.
내려와 이제 동서산으로 올라간다.
함께 했던 사람들, 왼쪽부터 요용 교수 아들, 요용 교수, 요용 교수 남편인 장 교수, 노란색 티는 요용 교수의 대학 후배.
바위 목탁. 그럼 석탁?
여기도 대나무가 많다. 대나무 숲이다.
동서산에서 하산하여 부근 호수를 찾아갔다가 120원이라는 입장료에 깜짝 놀라 나와서 찾아간 상해진산식물원.
입장료 60원.
첫번째 온실은 진기식물원.
뿌리가 신기하다.
꽃인가, 잎인가.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모든 게 신기하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 놓았다.
두번째 온실인 열대식물원.
공원 내 셔틀차를 탄다.
식물원이 온실뿐만 아니라 야외에도 엄청 넓게 조성되어 있다.
타고 가다가 정류장에 서면 그곳에 내려서 좀 놀고 구경하다가 다른 차를 타면 되는 시스템이다.
우리는 광산식물원에 가보기로 했다.
예전 채석장이었던 이곳을 식물원으로 꾸며 놓았다.
그리고 광산식물원에서 나와 출입구에 와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나는 미처 들어가보지 못했던 사막식물원에 들어가 보았다.
거의 입구만 볼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사막 식물의 대표인 선인장.
벌써 식물원도 문을 거의 닫았다. 주차장에 돌아와 차를 타고 상해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추석의 보름달.
건물 위에 얹힌 듯하다.
송강 지역의 한 식당에 들러 저녁을 먹기로 한다.
미리 차려져 있는 월병.
한 상 그득한 만찬.
바로 이 식당이다.
눈물나도록 고마운 요용교수의 가족들,
언젠가 반드시 보답하리라 생각하며 집에 들어와 창 밖을 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동쪽 하늘 중간에 떠 있다.
저 달을 그리운 그님도 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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