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너무 지쳐할 무렵 길 건너편을 보니 웨딩사진 찍는 커플이 보인다.
새출발, 사랑, 설레임이란 결혼을 앞둔 신랑신부들을 보니 조금 생기가 생기는 듯 하다.
신부도 지쳐 있는 모습이다.
걸어왔던 길을 돌아본다.
여기도 동상이 있다.
어느 똥개가 명사의 동상을 몰라보고 실례를 했나?ㅎㅎ
아까 벽화조각으로 나왔던 섭성도. 저명 작가, 교육가, 출판가.
원명은 섭소균이며, 강소성 소주 출신. 1927년부터 1935년까지 이 지역에 살면서 <소설월보> 주편을 맡았었고, 유명한 소설 <예환지>를 썼었다.
상당히 장수했던 사람.
길 가에는 종종 이렇게 장기, 카드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극장인가.
찰리 채플린의 상징인 우스꽝스런 자세의 동상이 문앞을 지키고 있다.
정령.
아까보다 훨씬 앳되어 보인다.
본래 호남성 대지주의 딸로서, 1933년에 이 지역에 살았었다고 한다.
그녀의 토지개혁운동을 소재로 쓴 소설《태양조재상건하상[太陽照在桑干河上]》는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스탈린상을 받았다고 한다.
역시 장수했다.
문학가들은 자기 관리를 하기 어려운데, 대단하다.
곽말약.
20년대와 40년대 두 차례 이 지역에 살았었다고.
역시 장수했다.
이 지역 거주했던 문학가들의 특징 중의 하나가 장수인가.
아닌가 보다. 대표적으로 노신이 그렇지 못했으니까.
교회 건물 같다.
부메랑 같은 거리 중간쯤, 즉 부메랑의 꺾이는 부분 쯤에는 골목 안쪽으로 이렇게 번화하다. 무얼까.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먹거리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댄다.
이제 저 길 끝이 바로 이 거리의 끝이다.
이제는 집에 갈 일이 걱정이다.
어쩌나. 딱 퇴근시간에 걸렸는데...
아직도 남은 동상이 있다.
심윤묵.
현대시 <월야>, <삼현금> 등으로 유명하고, 호적, 유반농과 함께 현대 백화시를 연 사람이다.
일식 건물이다.
이 사진에 나온 설명이 위의 사진에 대한 설명인지 아래 사진에 대한 설명인지 가물가물하다.
그것도 아니면 지친 나머지 마구 되는대로 찍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다시 갈 기회가 있으면 꼭 확인해 드리겠다.
홍덕당이란 교회.
역시 우수건축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1928년 미국북장로회와 중국신도들이 힘을 합해 지은 것이라고 되어 있다.
문이 잠겨 있어 실내는 볼 수 없었다.
좌련 구성원들이 회의하는 모습.
빈 자리는? 나를 기다렸던 것인가?
동지들, 지각한 이방인을 양해해 주게나...
그다지 길지는 않는 거리다. 그러나 사전에 중국현대문학, 특히 좌익작가연맹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입수한 후에 거닌다면 조금은 흥취가 날 것 같다. 중국현대문학에 대해 전혀 조예가 없는 문외한들에게는 거저 하나의 그렇고 그런 거리일 뿐이라고 느끼기 십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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