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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육상쟁의 전설; 조식(曹植)의 칠보시(七步詩)

by 유경재 2015. 4. 15.

 

<七步詩>  일곱 걸음만에 지은 시

 

煮豆持作羹,1)  콩을 삶아서 콩죽을 쑤는데,

漉豉2)以爲汁.  삶은 콩을 걸러 즙을 만드네.

3)在釜下燃,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豆在釜中泣.     콩은 솥 안에서 운다네.

本是同根生,     본래 한뿌리에서 났것만,

相煎4)何太急? 서로 볶아대는 게 어찌 그리도 급한가!

(zhǔ dòu chí zuò gēng, lù chǐ yǐ wèi zhī. qí zài fǔ xià rán, dòu zài fǔ zhōng qì. běn shì tóng gēn shēng, xiāng jiān hé tài jí?)

 

주석

1) 煮豆持作羹(자두지작갱): 는 삶다, 익히다. (가지고서). 은 국, . 이 구는 다른 곳에는 煮豆燃豆萁(콩을 삶으려고 콩대를 태운다)라고도 되어 있다.

2) 漉豉(록시): 은 액체를 걸러내다. 는 삶은 콩.

3) (): 콩대, 콩줄기.

4) (): 달이다, 끓이다, 지지다.

 

 

 

설명

宋 劉義慶世說新語에서 魏文帝 曹丕曹植을 제거할 목적으로 일곱 걸음 걸어갈 동안 시 한 수를 짓게 하고 짓지 못하면 죽이고자 했는데, 曹植이 이 시를 지어 형제 간의 반목을 풍자하니, 曹丕가 매우 부끄러워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위에 관해서는 옛부터 이견이 많다. 왜냐하면 이 시와 고사가 三國志曹植傳曹子建集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후인들이 작가의 처지를 동경하여 이름을 가탁하여 지은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또 판본에 따라 煮豆燃豆萁,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太急.의 네 구로만 되어 있는 곳도 있다.

 

斷想

같은 부모 아래 맺은 형제 · 자매의 인연. 촌수로 보아도 부모 자식을 빼면 가장 가까운 사이건만 옛날부터 이 天倫이 어그러진 경우가 허다히 나타나는 경우는 왜일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의좋은 형제라는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반대로 웅변하고 있는 것일 게다. 게다가 骨肉相爭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굳이 옛날로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위, 아니 나 자신의 경우는 어떤가? 혹 억지로 평화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의 관계가 인간에게 숙명처럼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신은 또 왜 농부 카인이 바친 제물보다 양치기 아벨이 바친 가축을 더 반겨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