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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본능

[상해여행] 5.30운동기념비와 난징루

by 유경재 2012. 2. 12.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달콤한 잠에서 깬 상해에서의 둘쨋날,

오늘 계획된 일정은

남경로를 통해 외탄까지 걸어갔다가 외탄 산책 후 수상페리를 타고 푸동으로 건너가 빈쟝다따오를 걸어서

동방명주까지 갔다가 진마오따사 등까지 구경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느즈막하게 일어나 호텔 로비로 내려오니 호텔의 조식은 뷔페식이 아니라

국수 종류 두 종류뿐이기에 아침식사는 생략한 채 인민광장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인민광장역까지는 8호선으로 단 두 코스째로 매우 가깝다.

어차피 내년 8월이면 상해에서 살아야 할 테니 미리 교통카드를 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역 구내로 들어서니 자동발매기 외에 이렇게 창구가 눈에 띄었다.

가서 물어보니 교통카드 보증금 30원에 70원 충전을 한 교통카드를 살 수가 있었다.

이후 귀국할 때까지는 이 카드를 가지고 지하철을 이용했었으며, 한국과 다름없이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민광장역은 세 개 노선이 지나가는 환승역으로 상해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역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교통카드 충전소도 있었다.

 

인민광장역 16번 출구를 나오면 만나게 되는 풍경이다.

 

조금 걸어가니 독특한 형사의 조형물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한자로 된 五.卅(三十)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5.30운동 기념탑이다.

현대 중국의 반제 운동의 기폭제가 된 5.30운동.

1840년 아편전쟁을 통해 세계, 특히 서구의 존재를 깨달으면서 중화사상에 도전을 받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미국, 일본, 유럽의 강대국들이 속속 노쇠한 청나라, 중국으로 진주하게 되고,

그로 인해 중국과 갈등을 가져오게 되는데,

1925년 드디어 곪아가던 상처가 터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으니,

이름하여 5.30운동.

 

상해의 일본소유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중국 공산당 노동자 고정홍이 피살되고 십여 명이 부상을 당하게 되니,

이는 상해시민들의 분노를 야기하게 되어,

급기야 노동자는 물론이요, 학생과 시민들이 데모를 하게 이르렀다.

이에 제국의 군경과 충돌하여  중국인의 희생을 가져오게 되어 시민들은 마침내 노동자의 파업, 학생들의 휴업, 상인들의 철시 등을 통해 반제국주의 항거운동을 개시하게 되고, 이는 전국적인 반제운동으로 번져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기념비의 뒷면이다.

 

기념비의 벽면 뒷쪽의 조각, 항거하는 상해시민의 형상이다.

 

 

 

기념비 구경을 끝내고 주변을 살펴보는데, 소문에 들었던 상해버스투어 출발 정류장이 보인다.

 

2층으로 된 저 버스를 타고 총 3개의 노선을 구경할 수 있다.

 

다시 지하도를 건너 동쪽으로 나오니 바로 차없는 거리, 남경로 보행가가 나온다.

북경에 왕푸징이 있다면 상해에는 난징루가 있다고 하겠다.

상해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상해의 중심지, 상해 관광의 일번지라고 할 수 있다.

 

길 중앙에는 이렇게 행복한 가정의 시내 산책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품도 보인다.

 

난징루 건너편, 인민광장쪽 풍경.

 

난징루의 꼬마 관광차.

 

한 빌딩 주변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모여있다.

무얼까.

 

벽면이 수족관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안에 거북 등 신기한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광고를 많이 찍은 배우.

강희제로 나온 인물이기도 하다.

실물 크기의 인형으로 거리 중앙에 모셔져 있다.

 

식품점도 보이고. 

 

난징루 산책의 묘미는 일직선으로 걷는 것보다

난징루를 교차하는 골목골목을 훑어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중국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체리.

처리즈라고 하는 모양이다.

 

예원에서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맛볼 수 있는 그 유명한 남상만두[난샹샤오롱바오].

알고 보니 난징루 골목 곳곳에도 보인다.

분명 체인점은 아닐 터, 맛은?

 

이런 골목도 만날 수 있고.

 

바오즈를 쪄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아까 보았던 도시투어버스가 여기에서도 보인다.

 

난징루 중간쯤에 보이는 세기광장.

춤을 추는지 태극권을 하는지 분간이 안되는 몇몇 상해인들도 보인다.

 

난징루의 한 풍경.

 

세기광장의 휴게소.

 

난징루의 한 골목 풍경.

 

간식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역시 난징루의 한 골목 풍경. 이곳은 주택가로 보인다.

 

간식난전과 사 먹는 사람들.

 

상해의 익숙한 풍경 중의 하나.

건물 밖으로 장대를 내어 빨래를 말리는 모습.

 

난징루 동편 끝자락에 거의 다다랐다.

 

차없는 거리는 여기에서 끝.

예원도 걸어갈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분명 교통경찰은 아닌데 교통질서를 감독하고 있는 이 사람의 신분은?

교통협관.

뜻인즉, 교통질서유지를 위해 협조하는 관리.

 

차도를 하나 건너 조금 더 동쪽으로 나오면 드디어 황포강 서편인 외탄이 나타난다.

푸동의 상징인 동방명주 등이 보인다.

빨리 가 보자.

 

한때 상해시장을 역임했던 진의의 동상이 우뚝하게 서 있다.

 

진의로 말하자면, 중국 무산계급의 혁명가, 군사가, 정치가이며 중국 인민해방군을 창건한 지도자 중 한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10대 원수(元帥)이다. 1901년 8월 26일 사천성(四川省) 락지현(樂至縣)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중홍(仲弘)이다. 1919년 프랑스로 건너가 노동과 학업을 병행하였다. 1921년 중국 유학생들의 애국운동에 참가하여 체포되었다가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왔다. 1922년 중국 사회주의 청년단에 가입하였다. 1923년 북경으로 올라와 북경 중법대학(中法大學)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26년 초 졸업과 함께 사천성(四川省) 만현(万縣)으로 발령이 나 그곳에서 사천군을 이끌고 북벌과 대항하였다. 1927년 봄 무한 중앙군사정치학교 중앙위원회 서기에 임명되었다.

 

1949년 5월에는 상해시장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 계속하여 華東軍區, 제3야전군 사령원을 역임하였으며 1954년 국무원 부총리 겸 중앙인민정부 인민혁명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임명되었다. 1955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원수에 올랐으며 1급 八一勳章, 1급 독립자유훈장, 1급 해방훈장을 수상하였다. 1958년 2월에는 외교부장을 겸하였으며 1966년 1월 중공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맡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에 임표(林彪),강청(江靑)등 반 혁명집단에 대항하여 투쟁을 하였으며 심한 박해를 당했다. 그는 중공 제 8차 중앙정치국 위원이며, 제7,9차 중앙위원이였고, 1959년부터 제3차, 제4차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을 맡았었다. 1972년 1월 6일 북경에서 서거하였다.

 

푸동과 푸시를 내왕하려면 버스, 지하철, 수상페리를 이용할 수 있는데,

관광객들은 비싼 관광터널을 이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관광터널 타는 곳.

 

일단 내려가본 후 다시 외탄으로 돌아온다.

 

황포강 서편둑, 즉 외탄에서 바라본 푸동의 풍경.

 

맑은 날씨라 컴팩트 디카이지만 화질이 비교적 좋아 보인다.

 

외탄의 잘 정비된 방둑길.

 

현대중국 초기의 외탄의 서구 건물들.

 

다시 푸동 풍경.

 

하류쪽 풍경.

 

좀더 하류쪽.

 

외탄과 그 위를 오가는 관광객들 또는 상해시민들, 그리고 그 오른쪽의 오래된 서구식 건물.

 

좀 더 외탄을 거닐다가 수상페리를 타는 부두를 찾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