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고대문화, 특히 고전문학에 얼마나 소양이 있을까. 듣건대 백화인 현대문과는 달리 고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게 여긴다고 한다. 그런데도 고급중국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고문소양이 필수적인 모양이다. 우리도 이를 감안해 유명한 작품들, 특히 시 몇 수 정도는 외우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중앙일보 인터넷판 기사 전재임.]
[백가쟁명:강성현] 시장 바닥 사람과 당시(唐诗) 삼백수 [조인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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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2 10:22 입력
장쩌민 주석이 재임 당시 미국을 방문하여 이백(李白)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이라는 시를 읊은 적이 있었다. 이 시를 읊은 그의 의미심장한 의도는 논외로 하자. 실력과 교양을 갖춘 중국 최고의 지도자이므로 고상한 척 하는구나 라고 여기고 그냥 지나쳤다.
몇 년 전, 베이징 대학을 졸업한 후 고위 공직자로서 생활하고 있는 한족 출신 양(杨) 모 씨와 접촉할 기회가 꽤 있었다. 그는 술 몇 잔이 들어가면
“서리 맞은 단풍잎 봄 꽃 보다 더 붉어라(霜葉红於二月花)…”
라고 흥얼거렸다. 당나라 말기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이 그의 입을 통해 되살아난 것이다. “역시 엘리트 출신이라서 그런지 시적인 교양과 감정도 풍부하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얼마 전 단골 쌀 가게에 들렀더니 문을 닫았다. 다음 날 다시 찾아 가니 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반가이 맞아 주었다. “어제 왜 가게 문을 닫았느냐”고 묻자 시아버지 70세 생신이라고 하였다. 좀 아는 척을 하려고 “아 고희(古稀) 세요. 예로 부터 70세까지 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데…” 라며 말을 걸자, 대뜸 ‘人生七十古来稀’라고 하는 말은 옛 말이에요. “지금은 일흔까지 사는 사람이 너무 흔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얼핏봐서는 고래고래 악다구니를 지르기 십상인 그 입에서, 두보(杜甫)의 시 ‘곡강(曲江)’에 나오는 시귀가 거침없이 흘러 나왔던 것이다. “이 곳 시장 바닥 사람들의 평균 수준이 이정도는 되겠구나”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래 전에 잡지에서 본 우스운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국의 한 성악도가 이태리로 성악공부를 하러 떠났다. 그 곳에서 만난 뱃사공이며, 청소하는 아저씨로부터 동네 아주머니들에 이르기까지 ‘산타루치아’,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을 성악가 뺨치게 한 곡조씩 멋지게 뽑더라는 것이다. 기고만장해서 떠났으나, 처음부터 기가 질려버린 젊은 성악도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을 만하다.
문득, 작년 허난성 정저우(郑州)에서 머물 때 가까이 지낸 왕궈량(王国良, 37세)의 아들 왕쯔젠(王子建, 5살)이 생각났다. 쯔젠은 콧물이 흘러내려 몰골이 늘 꾀죄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구스르면 이내 낭랑한 목소리로 이백의 ‘정야사(静夜思)’ 등 당시(唐诗) 여러 편을 그 자리에서 줄줄 외웠다.
치엔산 니아오~ 페이쥐에(千山鳥飛绝)
완징 러언쭝미에(萬徑人踪滅)
꾸~저우~ 쑤오~리웡(孤舟蓑笠翁)
뚜우 띠아오 하안찌앙쉬에~(独釣寒江雪)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유종원(柳宗元)의 ‘강설(江雪)’이라는 시다. 아빠는 ‘진돗개 쓰다듬듯’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이 기특한 아이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순간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다. 허난성 뤄양(洛陽)에서 온 저우따펑(周大鹏) 학생에게 당시(唐诗)는 보통 언제 배우느냐고 묻자,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 의무적으로 배워서 수십 수 정도는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고 하였다.
산간 벽지 초등학교 학생들도 합창하듯 열심히 『논어』를 읽어 대는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쒸에얼스씨즈 부이위에후, 이어우펑쯔위엔팡라이 부이르어후(学而时习之不亦说乎 有朋自远方来 不亦乐乎.)”
돌이켜보니 중국 사람들은 남녀노소할 것 없이 우리 민족처럼 시와 풍류를 즐기는 아취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다. 이백(李白),맹호연(孟浩然), 백거이(白居易)의 시 몇 수 정도는 이들에겐 상식 수준이었던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战不殆’라 하였다. 콧대 높은 미국도 공자 동상을 세워가며 ‘중국 알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우리는 ‘공룡’이 돼버려 이미 한국은 안중에도 없는 중국을, ‘신용이 없다’, ‘더럽다’며 아예 상종조차 안하려 든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몰(沒)이해 탓이리라.
사실 중국 사람들은 비위생적이며 더럽기는 하다. 대중 목욕탕 문을 밀치자 마자 여러 명이 타올 한 장씩 몸에 걸치고 우르르 탕안으로 들어와 그 안에서 동시에 ‘샤워’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그 순간 놀라서 모조리 탕 밖으로 튀어 나온 후 다시는 탕속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얘기가 잠시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중국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말 중에, ‘늙어 죽을 때까지 배움은 끝나지 않는다(活到老 学到老)’라는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학습과 연구가 아직도 멀었음을 실로 통탄할 뿐이다.
강성현 peofish58@naver.com
장쑤성 옌청 사범대학 초빙 교수, 『차이위안페이 평전』 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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