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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잊혀진 그리운 맛을 찾아서: 어머니의 칼국수

by 유경재 2011. 12. 9.

정말 오랫만에 소원을 풀었다.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 다녀오는 시골 부모님 댁,

갈 때마다 왜 그렇게도 심신이 푸근한 지, 설치던 잠도 꿀맛처럼 달게 잘 뿐더러 비록 조촐한 찬이건만 상에 오른 음식들이 모두 내게는 지상 최고의 맛을 준다.

시골 집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깡된장찌개, 콩잎양념절임, 가죽나무순 절임, 시금장, 김치밥국 등등이 그러하며,

단순한 무말랭이 하나도 객지에서 먹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그건 아마도 모두가 그렇듯이 엄마의 손으로 길들여진 입맛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게 생각하기 싫으며, 순전히 엄마의 뛰어난 음식 솜씨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객지 생활이 고달플 때마다 고향이 떠오르고, 고향을 떠올리면 부모님이 떠오르고, 부모님을 떠올리면 어릴 때 부모님 슬하에서 자랄 때 먹던 맛있던 음식이 떠오른다.

맛나게 먹던 음식 중에 하나로 나는 단연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칼국수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외갓집에서도 곧잘 끓여주시던 바로 그 칼국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릴 때 이후로 한 번도 다시는 먹을 수가 없었다.

여름도 좋고, 겨울도 좋았다.

굵은 다시 멸치가 그대로 칼국수 속에 들어있는 한 솥 가득 칼국수의 그 구수한 향기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맴돈다.

남은 칼국수를 양푼이에 담아 놓으면 국물 쫄아든 면발을 마치 두부모 자르듯 한 쪽을 뚝 떠 내어 그릇에 담아 무우김치와 함께 먹던 그 기억이 너무도 간절하다.

철이 들고, 또 결혼을 하고 난 후, 외식으로 칼국수를 자주 먹게 된 것도 어쩌면 어머니의 칼국수 영향이 클 것이다.

근래 몇 년 간은 고향에 갈 때마다 어머님께 칼국수 타령을 해댄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아직 한 번도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 이유는 대개 고향에 머무는 날이 너무 짧다는 것이고, 또 칼국수 말고도 먹을 게 너무 많다는 것, 마지막으로 가만 보면 칼국수 타령 하는 사람은 나뿐이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번에 김장을 담그기 위해 2박 3일 일정으로 고향에 갔다가 마침내 소원을 풀 수 있었다.

그것도 시골을 떠나기 직전에 어렵사리 기회를 잡았다.

아내도 밀가루 반죽하는 데 거든다.

 

생각보다 반죽이 되다 싶게 하신다.

 

아마 부모님 당신들도 칼국수는 거의 해 드시지 않은 듯, 어느 구석에서인지 찾은 작은 홍두깨로 반죽한 밀가루를 민다.

 

몇 겹으로 말듯이 겹쳐서 칼로 썬다.

 

 

썰어놓은 칼국수의 면발.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었다.

옛날과는 달리 건데기를 모두 건져내고 맑은 육수만 쓴다.

 

거기에 대파를 썰어 넣었다.

 

고명이 너무 없어 김을 넣는다.

정말 단순한 엄마표 칼국수다.

너무 급작스레 만들다 보니 제철 아닌 애호박도 넣지 않은 단순한 칼국수.

아마도 옛날 먹던 그 칼국수도 이보다 더 복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어보니 면발 십히는 맛이 대단하다.

단순한 멸치 육수건만 어떻게 그런 구수한 맛을 내는지? 아마도 어머니의 손맛 때문이리라.

모처럼 어머니가 해 주신 칼국수 한 그릇으로 유년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린 즐거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