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뭣 때문이었는지 유경재를 가보지 못했다.
이번 주 월요일, 10월 24일이 절기로는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
가을을 온몸으로 저항하던 유경재도 서리를 당하지는 못했으리라.
게다가 주중에는 충주가 최저 기온이 0도까지 내려갔으니, 시내보다 1-2도 더 낮은 유경재는 분명 얼음이 얼었으리라.
서리가 내리고 얼음까지 어는 날씨를 무슨 식물이 견딜 수 있을까.
주말이 되자 만사를 제쳐놓고 유경재를 찾았다.
아니나 다를까 텃밭에는 토끼풀을 빼고는 모두 죽은 듯 말라 있었다.
해바라기도 굵어가는 씨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몇 그루가 넘어져 있다.
연못가에는 단풍잎이 보기 좋게 물들어 있다.
방울토마토도 말라있다.
쪽풀은 아직은 그 귀여운 꽃이 시들지 않고 있다.
고추도 이제는 끝이다.
마른빛의 목화는 가지마다 하얗고 탐스런 솜을 피우고 있다.
쑥갓의 꽃.
들깨도 한창 씨가 영글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유경재 텃밭의 식물 중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치커리.
아직도 왕성한 생명의 초록빛을 띠고 있다.
치커리와 이웃한 앉은뱅이상추.
서로 초록을 다투는 듯, 역시 아직은 건재하다.
유주의 예쁜 열매. 노랗게 익은 옆에 이제 갓 맺힌 파랗고 작은 열매도 보인다.
뒤늦게 맺힌 열매가 여기에도 보인다.
텃밭 가장자리에 심은 단풍들은 색깔이 그다지 곱지 않다.
쓰러진 해바라기들은 다시 일으켜세우고 돌을 주워다가 바쳐주었다.
집 뒷편의 산수유나무도 이제 한창 빠알간 열매가 익어간다.
그렇게도 서슬이 퍼렇던 유경재의 초록식물들도 서리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걸 보니 중국 남조 동진-송 때의 전원시인 도연명의 시가 생각난다.
그가 팽택령을 그만두고, <귀거래사>를 쓰면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쓴 연작시 <귀원전거> 중의 하나.
種豆南山下(종두남산하) 남산 아래 콩을 심었더니
草盛豆苗稀(초성두묘희) 잡초만 무성하고 콩은 드무네.
晨興理荒穢(신흥리황예) 새벽 같이 일어나 거친 김을 매고
帶月荷鋤歸(대월하서귀) 달빛 받으면서 호미 메고 돌아오네.
道狹草木長(도협초목장) 길은 좁고 풀은 무성하여
夕露沾我衣(석로첨아의) 밤이슬이 내 옷을 적시는데,
衣沾不足惜(의첨부족석) 옷 젖는 것이야 아깝지 않으나
但使願無違(단사원무위) 다만 원하는 것 어긋나지나 말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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