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해외 전문가 시각 (3)
일중 관계와 일본 외교의 선택: 미중 관계의 구조적 전환 시기 1)
일본은 안전보장을 위해, 그리고 단독 외교력의 저하로 인해 대(對)중국 관계에서도 미일 관계를 외교의 기축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런데 미중 관계는 1979년 이래 40년 동안 큰 변화를 이루었는데, 최근 양국 관계가 구조적 전환 국면에 있다. 향후 일시적인 관계 개선이 보이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항상 계속되는 긴장 중의 한 국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정권은 미중 간의 긴장관계 속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구상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주도적 역할을 행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기시다 정권이 한국, 아세안(ASEAN)과의 우호를 위해 펼칠 국제 전략과 독자적인 외교공간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대중 자세와 일중 관계
일중 관계를 거론하기 위해서는, 미중 관계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본 외교는 항상 미국과의 관계를 벗어나서는 논할 수 없다. 일본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됨에 따라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 일본은 단독 협상력이 약해져서 점차 미중 관계를 중심으로 일중 외교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2010년대 전까지 일본의 GDP는 항상 중국을 앞서있었다. 1990년에 일본의 GDP는 중국의 8배, 2000년에는 4배 이상이었고, 2005년에도 2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2012년에 중국의 GDP는 이미 일본의 약 3배의 규모가 되었다.
먼저, 미중 관계는 지극히 큰 구조적 전환을 거쳤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다. 미중관계 개선은 1972년에 시작되지만 1979년 국교 수립 이후에는 더욱 크게 발전하였다. 한때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경제성장에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 결과, 양국의 경제 관계는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다. 덩샤오핑은 국교 수립 후 방미 때 수행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편에 서 있는 제 3세계 국가의 현대화는 모두 성공하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에 맞선 국가의 현대화는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는 미국 편에 서야 한다.” 중국은 2001년 WTO에 가입하며 더욱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처럼 미중관계의 진전으로 장쩌민 시대는 가장 큰 혜택을 받았다.
미국 측에서는 이러한 경제성장이 중국의 체제전환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강한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력이 일정 규모를 넘어설 무렵부터 유화적 관계에는 변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전량(戰狼) 외교’라는 모호한 말이 사용되지만, 케네스 리버탈(Kenneth Lieberthal)과 왕지스(王緝思)는 2009년부터 중국 외교가 ’강세 (Assertive) 외교’로 전환되었다고 보았다. 30~40년 계속된 우호적인 미중 관계는 오늘날 이미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시적인 관계 악화가 아니라 구조적인 전환이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중동에 깊게 관여하기 시작하며 상대적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졌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일종의 유화(和和)자세로, 중국이 자유롭게 성장과 확장의 기회를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 오바마 정권과의 합의를 무시하고 중국은 남중국해를 군사적 요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중관계의 전환으로 미국 대중의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그것은 ‘판다 허거(Panda Hugger, 중국을 지지하는 서구 정치인)’에서 ‘드래곤 버스터(Dragon Buster)’라고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상반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 공세가 명확한 전환점으로 거론되지만, 이보다 앞선 2017년 12월에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보고(National Security Strategy)’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지역별 항목 중 ‘인도 태평양’을 첫머리에 기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경쟁 세력으로 지목하며 중국이 경제적 지원과 군사적 위압으로 주변국을 포섭하고, 사회자본 투자와 공격적 무역전략으로 지정학적 야심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나아가 남중국해 인공섬을 군사거점화하려는 중국의 움직임도 강하게 견제하였다. 이와 같은 행보는 미중관계에 대한 미국의 관심사와 외교적 방향을 반영하고 있다.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조차 2018년 11월,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오랜 지인들과의 만찬에서 미중 관계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관적 감회를 토로한 바 있다.
이제 미중 관계는 일시적인 관계 개선이 있더라도, 그것은 항상, 계속되는 긴장 국면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점은 올해 11월 16일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다. 미중 관계의 악화는 몇 년 동안의 일이 아니고, 10년에 걸쳐 지속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처음 40년동안 안정된 관계가 지속된 과거를 돌이켜 봤을 때, 이에 상응하는 기간 동안 양국의 악화된 관계가 진행될 가능성마저 있다.
일본 당국의 정책 지향을 감안할 때, 일본은 미일관계를 외교의 기축으로 계속 묶어둘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일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룸으로써 일본의 외교·군사적 안정을 상당 부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중 관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미중관계와 미일 안전보장체제라는 제약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중 관계를 신냉전으로 간주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미국은 중국을 단지 ‘최대의 경쟁상대’로 규정하지만, 러시아, 이란, 북한처럼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러시아에 대한 입장보다 더 친화적인 것은 아니다. 또 중국과 러시아가 연합하는 경우 미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의 접근을 재촉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하는 과제를 역시 안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에 의한 쿼드(Quad, 2019년 9월 뉴욕에서 첫 외무장관 회의)의 활성화가 진행 중이다. 쿼드는 GDP 총합에서 중국의 2배, 방위비에서 4배인데, 위성과 우주 이용을 포함한 협력의 틀은 안전보장 측면에서 중국을 강하게 의식한 것이다. 나아가 미국·영국·호주가 참여한 오커스(AUKUS, 2021년 9월 15일 발표)의 출범에서도 미국의 강한 의사를 읽을 수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 5G로의 연계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호주가 다윈(Darwin) 상업항과 관련하여 주 정부와 중국 간에 맺은 계약에 대한 강한 재검토 조치는 미국의 대중정책에 적극적인 동조를 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의 현 상황
내년 가을, 시진핑 총서기와 당 지도부는 제 20차 당 대회로 2기 임기를 마치게 된다. 그런데 2017년 19차 당 대회에서 후계자가 선출되지 않았고, 2018년 3월 전인대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 임기도 철폐됨에 따라 시진핑 중심의 당지도부가 3기 연임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부패 척결을 통해 수많은 정적을 몰아내는 동시에, 불문율이었던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처벌했다는 점에서 현 정권이 임기를 지속하리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 더구나 시진핑이 연임된다면 리커창 총리의 임기 만료와 맞물려 권력이 시진핑에게 더욱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68세 정년제 관례에 따르면 현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7명 가운데 시진핑 서기를 포함한 3명이 정년에 이르게 된다. 시진핑은 예외로 하더라도 은퇴할 2명을 충원할 새로운 인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은퇴연령은 아니지만 임기가 만료되는 리커창 전 총리의 전출도 확실하여 후임 총리 인선과 더불어 리커창 총리의 이후 거취도 주목된다.
현재 중국 사회는 정치·경제·사회·문화·환경적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GDP의 22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민간 채무 잔고가 대표적인 예이다. 부동산 기업 헝다의 채무위기도 이와 같은 방대한 민간 채무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환경문제도 쉽게 해결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발전량의 약 60%를 석탄 화력에 의존하여 온실가스 배출 억제 노력은 저조한 결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시진핑 지도부의 과도한 사상 통제로 사회 전반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면, 현 외교 노선에는 강한 국민적 합의가 존재한다. 시진핑 지도부는 남중국해, 신장, 홍콩, 대만 문제에 대하여 강세 외교를 펼쳐왔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 대중의 관계를 단순한 강권 지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중국의 당과 정부는 보통선거로 정당성을 확보하지는 않지만, 독특한 방식으로 민의를 수렴하여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중국 당국은 매우 높은 학습능력과 생존 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즉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치밀한 정치적 전략을 바탕으로 상당히 강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체제가 크게 흔들리는 사태는 상상하기 어렵다. 얼마 전 개최된, 제 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체회의(6중전회, 2021.11.08.-11)에서 중국 공산당이 3번째 역사결의를 채택하며 시진핑의 위상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수준으로 격상하여 3대 지도자로서 시진핑 장기집권을 공고히 하였다. 그럼에도 시진핑 지도부의 정치적 안정성이 앞으로도 보장되리라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부패 투쟁을 제외하면,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비견될만한 실적을 거두지 못했고 역사결의의 합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공산당 내 상당한 알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심화되는 빈부격차 문제를 방치할 경우 시진핑 지도부의 정치적 안정에 심각한 치명상이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지난 8월 17일 중앙재경위원회는 ‘공동 부유’라는 개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공산당이 기득권 집단인 점을 감안할 때 ‘공동부유’의 강조도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는데는 한계가 있다. 기득권 집단인 공산당의 지도아래 부의 유효한 재분배가 가능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중국 내부적으로는 IT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외국인의 금융업 진출에 대한 견제, 여론조작, 정보독점, 국영기업의 자금융통 지원, 데이터 유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다 보면 강력한 중앙이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 시진핑을 필두로 한,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는 거대한 국가를 운영하는 핵심 동력으로서 여러 불안의 가능성을 불식시키고 있다. 강한 중앙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이 강한 통제력을 잃으면 전국적으로 소요와 폭동이 발생했던 중국의 역사를 고려할 때, 중국의 오늘날 체제를 비판적 관점에서 벗어나서 볼 필요가 있다. 감정을 배제한 채 균형 잡힌 중국 인식이 필요하다. 이 나라가 안정되어 있다는 것은 이 나라와 교류하는 외부의 힘에게는 다행스러운 면이 있음을 재인식해야 할 것이다. 또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을 간과하거나 경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 경제가 활력을 잃는다면 수 많은 국가들 역시 많은 기회를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 중국없이 살아가기)는 이제 불가능한 선택지인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일본이나 한국이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과 거대한 경제 규모를 따라잡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백신 정치는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드러냈다. 예컨대 대다수의 선진국은 중국산 백신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중국과 깊은 유대를 쌓아온 싱가포르나 남아메리카는 승인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 구상도 백신과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에서 실현 가능해질지 중점적으로 지켜봐야 할 것이다.
중국 외교의 과제와 강세 외교의 배경
중국은 단기적으로 두 가지 큰 외교과제를 풀어가야 한다. 코로나 외교와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바로 중국의 외교 능력을 판가름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동계올림픽의 경우, 미국을 포함한 서방 정부가 ‘외교 보이콧’을 외치고 있기에 중국의 현명한 외교적 대처가 요구된다. 그리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중국이 얼마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 여부도 주목된다. 올해 9월 16일 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였다. 중국의 TPP 가입은 경제성장을 위한 주춧돌이자 핵심적인 외교 전략으로서 반드시 성취해야 하는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쿼드, 오커스와 더불어 남태평양에 배치된 8,000명의 프랑스군2)에 대한 대응도 필요하다.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뜻하지 않은 사태가 생기고 상황이 악화하면 어려운 방향타를 잡아야 할 판국이다. 중국과 우호관계였던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퇴진하면서 EU와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또 하나의 과제이다.
2016년 9월, 시진핑은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남중국해 인공섬을 군사화 하지 않기로 합의하였고, 이와 같은 사실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2016년 7월에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결도 나왔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법에 대하여 일방적인 이해와 해석을 보여주고 있다. 올해 2월 시행된 해경법, 9월 개정된 해상교통안전법 등 입법 조치가 잇따라 강행되고 있다. 이들 조치가 중국의 국내 논리인 ‘법치’에 근거하여 강압적으로 운용된다면, ‘법의 지배’를 중시하는 국가들이 ‘상호주의’ 논리에 따라 중국에 대해서만 중국의 ‘법치’ 논리를 적용시켜 한층 더 긴장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미·중간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지역패권에 변화가 이뤄지는 가운데, 중국 내에서는 기존과 차별화되는 하드·소프트 파워를 과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독선적으로 보이는 발언과 방향성이 설득력을 갖는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인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 외교부의 강경한 자세는 국외용이라기보다는 국내 여론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이전까지 중국 내부에서는 “중국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다”라는 인식이 컸다면 급속한 정치·경제적 성장을 이룬 오늘날 “(이제) 더 이상 참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과거 중화제국이라는 ‘역사적 자존심’이 미묘하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유엔 상임이사국이자 군사적·경제적으로 강력한 대국이지만 중국 공민에게는 여전히 근대사 속에서 겪은 고통의 잔재와 굴욕의 감정이 축척되어 있다. 중국이 피해자라는 인식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가 이러한 피해의식을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중국을 피해자로 보는 공민의 인식은 무책임한 언행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 이와 같은 인식은 ‘중국은 개발도상국’이라는 강한 자기주장과는 또 다른 관점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 5월 9일 중국 로켓인 창정(長征)-5B의 잔해가 낙하하여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인명 피해를 우려했지만 중국 당국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현재까지 중국은 대국으로서 자신의 이익보다 국제규범의 준수를 우선시하려는 노력에 거리가 있어 보인다. 11월 15일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핵 군축·군비 관리 협상에 관해 전략적 안전성을 논의하기로 하였으나 협의의 결과는 불투명하다. 중국의 국방력 규모를 감안하면 정보공개도 미흡하다. 중국의 입장에서 이와 같은 태도는 대미 외교의 전략일 수 있지만, 강대국의 책임을 간과한 결과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강대국이라는 지위와 이에 따른 책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지 못한 결과, 공민의 눈을 의식하여 더욱 강경한 외교적 태도를 선택하며 외교적 유연성을 놓치고 있다. 중국은 강경한 외교적 태도로 인해 미국, 영국, EU,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로부터 비판받지만 이와 같은 비판이 중국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법의 지배’를 축으로 하는 공조는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시다 신정권의 탄생과 전임 정권의 유산
올해 10월 4일 일본에서 기시다 후미오 신임 총리가 취임했다. 스가 요시히데 정권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해마다 총리가 바뀌는 악몽이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확산되었으나, 정책 능력이 뛰어난 총리가 등장하여 이러한 불안을 불식시켰다. 기시다 정권은 10월 31일 총선에서 자민당 단독으로 절대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강한 집권 기반을 확보하였다. 기시다 정권에 제약을 가하는 당내 보수적 세력에 대해 상당한 대항력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다. 기시다 신임 총리는 30년 만에 선출된 ‘히로이케회(宏池会)’ 출신 총리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히로이케회란 이케다 하야토 총리(1960-64년 재임)의 흐름을 따르는 자유주의 진영으로서, ‘경(輕)무장’, ‘헌법옹호’, ‘경제중시’, ‘상징 천황제’ 등을 주장한다. 요시다 독트린의 연장선상에 있는, 온건 우파에 해당하기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주변 국가와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10월 8일 전화 통화로 성사된 일중 정상회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시다 총리는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전임 정권을 되돌아 보면 기시다 신임 총리의 국정과제를 알 수 있다. 전임 아베 신조 정권은 무엇을 이뤘었는가? 아베노믹스는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아베 전 총리가 예측했던 인플레이션율 2%는 한 번도 실현되지 못했고, 재정위기는 더욱 악화되어 빈부격차가 벌어졌다. 일본은행이 활발하게 외국 금융기관을 사들여 상장투자신탁인 일본은행보유 자산과 국채가 최대치로 증가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음 정권의 과제로 넘겨졌다. 물론 아베 외교에는 현실주의라는 측면에서 일정 정도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다. 첫째, 그가 틀림없는 대만파였지만, 중국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어 2006년 제1차 아베내각에서는 취임 즉시 방중·방한하였다. 동시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6년 연속 야스쿠니 참배를 함으로써 헝크러진 대중·대한 외교의 수복을 시도했다.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제2차 내각에서도 중국 국가주석 방일 건을 계속 고집했다. 둘째,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사적 친분을 통해서 미국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셋째, 자위대가 미일 협력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법적 기반을 정비했다. 넷째, 트럼프 정권이 이탈한 TPP 교섭을 TPP11이라는 형태로 정리해 냈다. 다섯째, 한국에서는 편견이 충분히 해결되지 않아서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한일 안보협력을 중시하여 역사적인 문제를 처리하려고 시도했다. 7년 9개월에 걸친 아베 외교의 유산과 제약을 기시다 외교가 이어받게 되었다. 기시다 총리의 최측근이자 유능한 외무상인 하야시 요시마사에게 상당한 기대를 걸어본다.
일본 외교의 과제
앞으로 일본 외교는 다음과 같은 과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첫째, 우선, 미국과 안정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안정된 미일관계는 일본에 있어서 안전 보장상의 기축이자 국제사회에서 강한 발언권을 확보하는 발판이다. 단순히 미국을 맹종해서는 안 되겠지만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둘째, 일본이 제안했던 ‘자유롭고 열린 아시아 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이라는 틀의 유효성에 유의해야 한다. FOIP 구상의 3대 핵심은: (1) ‘법의 지배’, ‘항행의 자유’ 등의 확산, (2) 인프라 정비 등을 통한 연결성 강화와 이를 통한 경제적 번영, (3) 해상법 집행기관의 능력 구축 지원 등을 통한 평화와 안정 확보 등이다. 처음 아베 정권이 FOIP를 구상할 당시에는 대 중국 포위망의 수단으로 간주되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못했지만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탄력을 받으며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일본도 ‘전략’이 아닌 ‘구상’으로 부르며 중국에도 참가를 호소하고 있다. 셋째,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 TPP 논의와 가입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초창기 회원국의 권리를 얻을 수 있었다. 최근 가입을 신청해 온 영국, 중국, 대만에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충분한 전략이 필요하다. 제멋대로 운용함으로써 높은 성과를 내지 못했던 WTO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 TPP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무역 규칙의 구축을 목표로 하여 만들어진 협정이다. 일본이 중심이 되어 규칙 위반에 따른 엄격한 대응, 효과적인 분쟁처리를 위한 제도 및 기관의 능력 구축 등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일단 TPP가 출범한다면 지금까지의 갈등과 상관없이 생산적인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일본의 국제사회 지위와 역할을 묻는 문제이기에 아마도 기시다 정권의 입장에서 가장 치열한 외교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중국과 우호적인 경제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쿼드 4개국 간 AI·반도체 기술협력 및 공급망(Supply-Chain)의 구축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기후 변동 문제는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일본이 유럽이나 미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 중국은 환경문제에 관한 한 확실히 개발도상국의 대표로서 인도와 협력할 것이며 선진국의 요구사항을 거부하고 개발도상국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자 할 것이다. 중국이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앞에 터프한 협상자로서 가로막게 될 것이다. 한편, 지구 온난화 대책으로서 재생 가능 에너지의 활용과 중요도를 늘려야 한다. 현재 태양광 패널 분야는 중국이 세계 총 생산량의 70~80%를 장악하고 있지만, 일본 역시 미국처럼 태양광 패널의 국산화를 진행시키고 적극적인 협력관계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한편, 석탄 화력발전의 비율 감소로 일중이 기술 협력할 여지는 크다. 여섯째, 일본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ASEAN의 좋은 이해자로 계속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이다. 미국과 중국 모두를 정면으로 마주 보지 않고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요컨대 일중 관계의 장래는 변화하는 미중 관계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한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면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1) 일본어 원문은 <아시아 브리프>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2) [편집자 주] 프랑스 본토로부터 15,000㎞ 떨어진 남인도양의 마다카스카르 근해 도서국가들이 프랑스령 해외영토이다. 이들 도서국가 인구는 약 1천5백만 명이고, 프랑스군 8,000명이 주둔하고 있으며, 해군함대는 프랑스 폴리네시아에 상시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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