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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가니 추위가 오네

[24절기] 경칩(驚蟄): 개구리가 잠에서 깬다는 날

by 유경재 2022. 3. 4.

3월이다. 역병의 창궐 속에서도 학교마다 새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었다.

우수 절기에 대한 글을 올린 지가 정말이지 바로 엊그제 같건만 내일이 벌써 경칩이다.

쏜살같은 세월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로서, 우수(雨水)와 춘분(春分) 사이에 온다. 24절기는 기본적으로 태양의 궤도인 황도의 움직임을 기본으로 정해지므로 양력 날짜에 연동된다. 경칩은 태양의 황경이 345°인 날로 대개 35-6일이다. 이 무렵 양기가 상승하고, 기온도 올라 따뜻하게되며, 가끔 봄 천둥이 치고 비도 자주 내려 만물이 본격적으로 생동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농사일도 시작된다. “春雷驚百蟲”(춘래경백충: 봄 천둥소리에 온갖 벌레들이 놀람)이란 말이 있듯, ‘’()자는 놀라게 하여 깨우다라는 뜻이고, ‘’()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 벌레를 총칭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두문불출, 집에만 있는 경우를 마치 동물이 겨울잠 자듯 하다고 해서 蟄居’(칩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경칩은 땅의 얼음이 녹으며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 활동을 시작한다는 날이란 뜻인데, 실제로는 벌레들이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지는 않으며, 봄기운, 양기가 땅속부터 대기까지 충만하니 자연스럽게 그에 감응하여 깨어나는 것이다. 어쩌면 그러한 봄기운과 양기는 실제 소리로 들리는 천둥소리보다 더 위대하고 대단할지도 모르겠다.

 

명칭에 대해서는 원래 계칩(啓蟄)이란 명칭으로, 서한(西漢) 때 편찬된 大戴禮記(대대례기) · 夏小正(하소정)正月啓蟄(정월계칩)”이라고 되어 있다. 서한의 6대 황제였던 경제(景帝)의 이름이 유계(劉啓)여서, 황제 이름을 ''자를 의미가 비슷한 '놀랄 경()'자로 바꾸었다고 하기도 한다. 당대 이후에는 피휘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한나라 때의 명칭을 습관적으로 썼으며, 그것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여전히 啓蟄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중국의 전통의학서인 황제내경(黃帝內經)(BC475~221)에 계절의 변화와 인간의 삶에 대해 언급된 이래, 당나라의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945),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1281) 등 여러 문헌에 경칩 기간을 5일 단위로 세분, ‘경칩삼후’(驚蟄三候)라고 하여 각 기간의 대표적 기후에 따른 자연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초후(初候)인 첫 5일간은 桃始華’(도시화)라고 하여 복숭아 꽃이 피기 시작하고, 중후(中候)에는 黃鹂鳴’(황려명)이라고 하여 꾀꼬리가 짝을 찾아 울며, 말후(末候)에는 鷹化爲鸠’(응화위구)라 하여 매가 눈에 보이지 않고 비둘기가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풍속](우리나라)

개구리 알을 먹으면 허리 아픈 데 좋을 뿐 아니라 몸을 보한다고 해서 경칩일에 개구리알을 먹는 풍속이 있었으며, 지방에 따라 도롱뇽알을 먹기도 했다고 한다.

경칩에는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서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했다.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해서 일부러 흙벽을 바르는 지방도 있다.

경칩날에 보리싹의 성장 상태를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한다.

단풍나무나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마시면 위장병이나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해서 먹는 지방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날 젊은 남녀들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 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행을 나누어 먹는 풍습도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칩은 정월대보름, 칠월칠석과 함께 전래의 연인의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기념일인 성촉절(Groundhog day, 22)이 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이월령(음력이므로 대체로 양력 3월 무렵에 해당)'에 경칩, 춘분 절기에 대한 당시 농촌 풍습이 전한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이월령

이월은 중춘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육일 좀생이는 풍흉을 안다하며

스무날 음청으로 대강은 짐작나니

반갑다 봄바람에 의구히 문을 여니

말랐던 풀뿌리는 속잎이 맹동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멧비둘기 소리나니 버들 빛 새로와라

보쟁기 차려 놓고 춘경을 하오리라

살진밭 가리어서 춘모를 많이 갈고

목화밭 되어두고 제 때를 기다리소

담뱃모와 잇 심기 이를수록 좋으니라

원림을 장점하니 생리를 겸하도다

일분은 과목이요 이분은 뽕나무라

뿌리를 상치 말고 비오는 날 심으리라

 

솔가지 꺾어다가 울타리 새로 하고

장원도 수축하고 개천도 쳐 올리소

안팎에 쌓인 검불 정쇄히 쓸어 내어

불 놓아 재 받으면 거름을 보태리니

육축은 못다하나 우마계견 기르리라

씨암탉 두세 마리 알 안겨 깨어 보자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조롱장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본초를 상고하여 약재를 캐오리라

창백출 당귀 천궁 시호 방풍 산약 택사

낱낱이 기록하여 때 맞게 캐어 두소

촌가에 기구 없어 값진 약 쓰올소냐

[풍속](중국)

驚蟄吃梨’(경칩흘리): 이때 배를 먹는 풍속이 있는데, 이때가 되면 입안이 건조해지기 쉽기 때문에 수분이 많은 배를 먹음으로써 수분을 보완하고자 하였다.

祭白虎化解是非’(제백호화해시비): 흰 호랑이는 구설과 시비를 주관하는 신으로 매년 이맘때 먹이를 찾아 나타나는데, 호랑이에게 물리면 그해 만사가 순조롭지 않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경칩 날에 종이로 만든 흰 호랑이에게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종이호랑이는 노란 색에 검은 무늬 및 한쌍의 송곳니를 그렸다. 제사 때에 돼지고기를 상에 올리고 돼지기름을 종이호랑이 입에 발라서 인간을 물지 않고 시비를 걸지 못하게 했다.

蒙鼓皮’(몽고피): 경칩 무렵의 천둥소리가 천둥의 신이 하늘에서 북을 치는 소리로 여겨서, 이날 북의 가죽을 입히기도 했다.

 

[속담]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

경칩 지난 게로군: 경칩이 되면 벌레가 울기 시작하듯 입을 다물고 있던 자가 말문을 열게 된다는 말

春雷一響, 驚動萬物.(춘뢰일향, 경동만물) 봄 천둥소리에 만물이 놀라 깨어난다

到了驚蟄節, 耕地不停歇.(도료경칩절, 경지부정헐) 경칩 때가 되면 농사일을 쉴 때가 없다

驚蟄春雷響, 農夫閑轉忙.(경칩춘뢰향, 농부한전망) 경칩의 봄 천둥소리에 한가하던 농부 바빠진다

[경칩 관련 한시]

驚蟄夜大風雪落驚寢(경칩야대풍설락경침)

<경칩날 밤중에 세찬 바람에 눈이 내려 자는 이를 놀라게 하네>

, 胡儼(호엄1360-1443)

 

急霰灑窗紙,(급산쇄창지) 급하게 내리는 싸락눈 창호지에 뿌려대고

飙風翻竹枝.(표풍번죽지) 세찬 바람은 대나무 가지를 부러뜨리네

劃然衾覺冷,(획연금각랭) 분명 이부자리 차가워진 줄 알겠으니

正是夢醒時.(정시몽성시) 바로 꿈에서 깨어났을 때

曉起瓦皆白,(효기와개백) 새벽에 일어나보니 기와지붕 모두 허옇고

春回花不知.(춘회화부지) 봄이 왔지만 꽃은 아직 모르네

老來肌骨瘦,(노래기골수) 나이가 드니 기골이 수척해져

無那被寒欺.(무나피한기) 추위가 나를 능멸해도 어쩔 수가 없네

 

경칩이지만 아직 봄기운은 미약하고 대신에 꽃샘 추위가 닥친 상황을 잘 묘사한 시다. 마치 올해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한 듯 하다. 며칠 전 31~2일 전국적으로 눈이 왔으며, 특히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려 장시간 교통이 마비되기도 했으니 이 시의 날씨와 비슷하다고 하겠다.

 

호엄(胡儼)은 자가 약사(若思)이며 남창(南昌) 사람이다. 천문, 지리, 율력, 점술 등에 조예가 있었다. 홍무(洪武) 연간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영락(永樂) 2(1404)에 국자감좨주(國子監祭酒)가 되었다. 명태조실록(明太祖實錄)》、《영락대전(永樂大典)》、《천하도지(天下圖志)등을 편찬하는 일에 관여하였다. 저서로는 이암문선(頤庵文選)호씨잡설(胡氏雜說)등이 있다.

 

[경칩 관련 우리나라 현대시]

경칩(박종영)

 

텃밭 거름더미에서

모락모락 더운 김이 솟아오른다

땅심이 기지개를 켜는

살아있는 땅의 맥박이다

 

나뭇가지마다 단물이 차오르고

달콤한 바람을 손에 담으니 구름이 내려와

촉촉한 물방울을 뿌리고,

 

땅을 구르니 일제히 솟아오르는

푸른 싹들의 아우성,

 

정녕 봄이 숨어있는 땅

경칩 날에,

지구의 숨바꼭질이

 

게으른 대지를 깨운다.

 

추가로 당나라 시 한 수를 더 감상하기로 한다.

 

<驚蟄>(, 劉長卿) <경칩>(, 유장경)

 

陌上楊柳方競春,(맥상양류방경춘) 길가 버드나무 한창 봄을 다투고

塘中鯽鰣早成蔭.(당중즉시조성음) 연못 안 물고기들 일찌감치 떼지어 다니네

忽聞天公霹雳聲,(홀문천공벽력성) 문득 들리는 하늘의 천둥소리에

禽獸蟲豸倒乾坤.(금수충치도건곤) 온갖 짐승과 벌레들 음양이 바뀌었네(겨우내 동면하던 음에서 봄을 맞아 활동하는 양으로 바뀜)

 

경칩 절기 때의 자연현상을 잘 표현한 칠언절구이다. 작가 유장경은 생졸년 미상의 중당(中唐) 시기 시인이다. 원래 선성(宣城)(지금의 안휘성) 사람이었으며, 후에 낙양(洛陽)으로 와서 살았다. 현종(玄宗) 천보(天寶) 연간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숙종(肅宗) 지덕(至德) 연간에 감찰어사, 소주장주현위(蘇州長洲縣尉)가 되었다. 생졸년이 불확실하여 현재 학자들 사이에 이설이 분분한데, 일반적으로 709-725년에 출생했으며, 786-790년에 죽은 것으로 본다. 그는 시를 잘 썼으며, 특히 오언시에 뛰어나 자칭 오언장성”(五言長城)이라고 했다. 그의 오언절구 <逢雪宿芙蓉山主人>(봉설숙부용산주인)은 중국의 학교 교재에도 수록되어 있다. 잠시 작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逢雪宿芙蓉山主人>(봉설숙부용산주인) 눈을 만나 부용산 주인의 집에 묵다

日暮蒼山遠,(일모창산원) 날이 저물자 푸른 산은 아득히 멀리 보이며

天寒白屋貧.(천한백옥빈) 날씨는 추운데 하얀 눈 덮힌 가난한 초가집

柴門聞犬吠,(시문문견폐) 사립문에 개 짖는 소리 들리니

風雪夜歸人.(풍설야귀인) 눈바람 헤치며 밤중에 집에 돌아오는 사람 있는 듯

 

이제 또 보름 남짓 지나면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이다. 그 시간은 또 얼마나 빨리 다가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