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눈깜짝 할 새 2010년이 지나가고, 2011년 새해가 밝았다.
2010년 마지막 날 밤, 구제역으로 낙산해수욕장의 연레 새해맞이 행사가 모두 취소되어 여행의 주 목적을 상실한 가운데,
그래도 새해 처음으로 동해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겠다는 희망마저 무참히 깨져버리는 순간이다.
잠에서 깨니 사방이 온통 눈으로 허옇다.
숙소 식당에서 제공되는 떡만두국을 먹는다.
그리고 원래 계획이었던 오색약수코스의 설악산 탐방에 대해 잠시 고민,
눈 때문에 오색약수까지의 접근의 어려움과 아이젠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점 등으로 산행을 포기하고 이전 몇 차례 가본 적이 있는 낙산사 탐방으로 정했다.
눈이 이렇게 내린 새해 첫날의 낙산사는 아직 가 보지 못하였기에.
낙산사로 오르는 언덕에서 바라본 낙산해수욕장 전경.
모두들 해맞이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동해여행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날씨가 협조하지 않으니 우리처럼 갈 데가 마땅찮은 듯 높은 파도가 밀려드는 해변에서 실없이 장난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렇게 낙산사 탐방에 나선다.
눈은 잠시 그쳤지만 날씨는 춥다.
그런데 바람은 그다지 불지 않건만 파도는 육지로 거세게 몰아친다.
방파제를 가뿐히 넘어들어온다.
조만간 철거되고 입구의 슬라브건물로 이전하게 될 포장마차 횟집들.
멀리서 보니 파도에 이전 인도네시아를 강타했던 쓰나미가 떠올라 내가 괜시리 겁이 난다.
그래도 어쩌랴.
저 포장마차 안은 조금 덜 춥겠지.
그리고 동해안에 온 김에 가능하면 많은 회를 먹고 가려고 횟집으로 내려선다.
간단히 멍게, 해삼, 개불을 맛본다.
입안이 상큼하다.
끝없이 몰려왔다 부서지는, 그래서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해조(海潮).
오랫동안 육지의 섬인 충북에 갇혀지내다 모처럼 가슴이 탁 트이는 심리적 해방감을 절정으로 맞는다.
의상대
언제 읽어도 힘이 불끈불끈 솟게 하는 시조.
경내 몇 군데의 약수를 만날 때마다 맛을 본다.
알콜로 찌든 속을 조금이라도 정제하려고.
멀리 산 아래쪽에 홍련암이 보인다.
여전히 파도는 무심한 바위에 부서지고, 잠시 멈췄던 눈발이 다시 날리기 시작한다.
수많은 세월 동안, 파도의 소란에 원만함을 배운 바위들.
그 구부정한 곡선의 무늬와 윤곽이 부럽고,
철저한 외면에도 몸짓을 잠시도 쉬지 않는 파도의 끈기가 부럽다.
홍련암.
새해 첫날부터 사람들은 또 무슨 이유들로 저렇게 바닷가 암자를 찾을까.
그리고 바다를 내려보며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회색 하늘, 회색 바다를 배경으로 덩그렇게 걸려있는,
그래서 나의 발걸믐을 멈추게 하는 풍경, 그리고 불없는 등.
해수관음상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서 있을 수밖에 없는데,
관음상과 내가 처음으로 만나던 때가 문득 생각난다.
그러니까, 언제든가? 1977년 10월 말이나 11월 초였으리라.
수학여행 차 설악산에 들렀다가 다음날 이곳에서 만났던 게 아마도 처음이리라.
그 당시는 금방 산 새옷을 입은 터라 너무 새것이어여서 어색하기 그지없던 불상이었었는데,
이제 3-40년 세월의 흔적을 몸에 입으니 조금은 불상의 자태가 난다.
그래서 고개가 숙여진다.
사오정 차림새 같은 뒷모습은 오늘 처음 느끼는 듯.
관음상을 한 바퀴 휘 돌고, 꿈이 이뤄지는 길이라 명명되어 있는 길을 따라 대웅전과 종각쪽으로 향한다.
몇 년 전 양양의 산불로 낙산사의 문화재와 건물은 물론 오래 견뎌낸 고목들도 고스란히 소실되었고,
지금 지어진 건물들은 이후 복원된 것이며,
소나무들도 이후에 옮겨심은 것이리라.
그 때 그 화재의 현장을 저 관음상은 다 지켜보았으리라.
지척에 태평양과 연결된 바다가 있는데,
어찌 신통함을 발휘해 그 물을 끌어다 불을 끌 생각은 하지 않으셨는지...
연등과 출입문이 무채색의 단조로움을 달래준다.
보타전.
화마에 희생당한 거목.
2011년을 우리는 그렇게 낙산사 탐방으로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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